어머니의 취미
어렸을 적부터 축적된 어머니에 대한 인상이 있다. 그중 하나는 외모에 진심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결혼 상대로 아버지를 선택한 이유가 얼굴과 키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옷도 너무너무너무 많다. 한번은 집에 정리 도우미를 부른 적이 있는데, 그때 집정리를 주도하면서 집안 옷의 5분의 4가 어머니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생과 나에게도 어렸을 적부터 외모와 관련된 훈계를 많이 하셨다. 쌍커풀 수술을 하라는 이야기는 10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듣고 있다. 또래에 비해 외모 가꾸기에 비교적 관심이 없는 내게는 고역인 일이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특이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바로 옷장에 쌓이는 옷들이 어느순간부터 원피스에서 등산복들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색의 분홍색 등산용 파카가 3-4개나 되는 것을 보고선 놀랐던 경험이 있다. 이외에도 각종 등산용 장갑, 폴, 바지... 어휴... 그건, 달리 말하면, 어머니가 등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등산을 즐기신다는 사실은 그 옷 더미들로부터 비교적 최근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내게 각인된 어머니의 모습은 궂은 활동을 꺼리는 고상한 이미지였기에, 다소 의외였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등산을 좋아하기에, 어머니가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 희한했다. 역시 유전자는 무시할 수 없는 걸까? 언제나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분이라 여겨왔던 어머니와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하니, 어쩐지 신기하고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산행과 캠핑을 즐기셨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성향이 부계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어머니가 등산을 처음 시작하신 것은 2020년 2월이라고 한다. 첫 산행 때는 너무 힘들어서 ‘괜히 왔다’며 후회하셨다고 한다. 겨울 태백산을 올랐는데, 기능성 등산복을 입고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로 추위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기억이 어머니로 하여금 그렇게나 많은 등산복과 장비를 구매하도록 했나보다. 겨울에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파타고니아에 등반하고 싶다는 내게, 어머니는 자꾸만 등산복을 더 사야 한다고 이야기하신다. 아마 태백산의 경험 때문이셨나보다.
어쨌거나 태백산에서 온갖 고생을 겪은 어머니는 한동안 등산을 멀리하셨다가 두 번째 산행에서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셨다. 그 경험을 계기로 성취감을 느끼며 꾸준히 산을 오르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또래에 비해 등산을 잘하는 편이고, 성과지향적인 성향 탓에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을 즐긴다. 어머니도 나처럼 성과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걸까? 어떤 일이든 열정을 다해 몰입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점에서 나와 닮은 면이 있는 것 같다.
자세히 여쭈어보니,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풍경이 좋고, 오르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오롯이 걸음에만 집중하게 되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시는 분은 아니라 그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등산이 어머니에게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나도, 동생도 어머니의 산행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어쩌면 중년층의 산행에 관한 사회적 편견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이렇게 등산을 다니는데, 어머니에겐 우리가 언제나 박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어머니의 소중한 휴식을 가로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