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과 진돗개, 상괭이

아버지의 취미

일산 집 현관에는 타이타닉 모형 배가 전시되어 있었다. 검정색과 빨간색 띠를 두른 배의 갑판 위에는,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사람 모형들이 가지각색의 옷과 장신구를 치장하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정성 들여 조립하고 색칠한 작품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는 오타쿠 기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그러니까 아버지가 40대 중반이었을 때쯤일까. 주말이면 늘 거실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새로운 조립 모형을 만들곤 하셨다. 어느 날은 탱크, 탱크에는 겉면뿐 아니라 내부에 앉아 있는 병사들의 눈, 코, 입과 헬멧, 군복의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히 색칠하셨다. 어느날은 유럽식 집, 집 모형을 만들 때도 집 앞의 작은 자동차 하나까지 스프레이로 색칠하며 완성도를 높이셨다. 내 주변의 40대 중반 어른들에겐 보기 힘든 취미였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놀았던 기억은 많지 않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취미에 몰두하셨고, 그렇게 완성된 모형들은 식탁 옆, 두 개의 커다란 5단 찬장에 정성스레 진열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일산집은 참 고집스러운 취향에 기반한 사치재들이 많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결국,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대부분의 모형들은 친가와 외가댁으로 옮겨졌다. 명절에 친가나 외가에 가면, 베란다에 쌓여 있는 배, 탱크, 비행기, 집 모형들과 골동품들을 종종 보게 된다. 모두 아버지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이사 이후, 아버지는 더 이상 조립 모형 만들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 작은 집에 페인트 냄새가 흩날리는 것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영국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였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것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동물 모형을 색칠하는 공방을 찾아갔다. 주로 연인들이 찾는 곳이었는지, 부녀가 함께 온 손님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날 아버지는 진돗개를, 나는 상괭이를 골랐다. 나는 음영 표현이 서툴러 상괭이를 온통 파랗게 칠했지만, 아버지는 진돗개의 배부터 귀 끝까지 세밀하게 음영을 넣어, 마치 진짜 털이 자라나는 듯한 착시 효과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 집엔 아버지의 조립 모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 와중에도 몇몇 유럽식 집 모형만은 거실 TV 옆에 두었지만. 대신, 진돗개와 상괭이 인형이 나란히 서서 현관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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