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바람
해외에 나와 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과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부모님과 통화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는 약간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영국 유학 시절, 여러 차례 응급실에 갈 만큼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숙사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왜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지 않아?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
그 말이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다가왔다. 나는 늘 ‘의존’은 해롭고, ‘독립’은 지켜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20살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한 이후로 많은 일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왔고, 부모님 역시 내 삶에 깊게 개입하지 않으셨다. 자연스럽게, 나 또한 점점 혼자 결정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진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의 조언은 마치 ‘지방 라디오 방송’처럼 멀게 들릴 때가 많았다. 첫 직군도, 대학원 진학도, 아프리카에서의 근무도, 그리고 남미행까지 모두 걱정하셨지만, 나는 들은 채 만 채 일을 저질러버리고 부모님을 납득시키는 편이었다. 부모님도 나를 끝까지 말리시지는 못했다. 나의 고집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항상 내가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틈을 보일 때마다 적극적인 설득을 시전하셨다.
타지에서 고생할 때면 가족 단톡방에 “저 힘들어요”라고 메시지를 남기곤 했는데, 아버지는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내게 습관처럼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험을 즐기지 마라. 도전 정신을 버려라. 편하게 살아라.”
그러면 나는 고집스럽게 이렇게 답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시지 말고, ‘스페인어 하루에 한 시간 더 하면서 이겨내보자’고 말해주세요.” 그러면 부모님은 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정말 그대로, 그렇게 말씀해주신다. 사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내게 타지 생활을 권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부모님마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외로워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처음으로 부모님 말씀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역 양관식이 딸역 금명이에게 "수틀리면 빠꾸"하라는 것이 아닌가. 성취하는 것이 없더라도 무리하지 말고 제주도 집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말이다. 이게 부모님의 마음인가보다. 나를 멈추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와도 받아줄 집이 있다는 의미인가보다.
영화 <소울>과 <동사서독>, 소설 <연금술사>, 노래 <외딴섬 로맨틱>. 이 모든 작품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비슷하다. 꿈이 멀리 있다고 믿으며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끝없는 여정을 마치고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진짜 소중한 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부모님이 내게 전하고자 했던 말도, 어쩌면 그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