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이야기하려면 할아버지를 보아야 한다
친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닮은 구석이 많다.
우선 장래희망부터 그랬다. 셋 다 미디어 업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산을 타고 캠핑을 좋아하며, 다소 투박한 성격. 허름한 것에 끌리고, 말랐으며, 잘 먹지 않는다.
뭔가에 꽂히면 깊이 빠지는 외골수 기질, 대세를 따르지 않는 반골 기질도 비슷하다. 할아버지가 동양방송 사태 당시 신군부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끔찍했을지를 짐작하면서도 어딘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한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술꾼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내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나는 오랫동안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떤 면들을 거부했고, 그로 인해 나 자신도 미워졌다. 지금 이렇게 그들의 장점이 담긴 특색을 곱씹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이야기는 절대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술을 마시면, 한반도 옆의 어떤 섬으로 혼자 여행을 가는 기분이야.”
아버지는 책상 위에 손가락으로 한반도를 그려놓고, 독도 근처쯤에 작은 섬 하나를 덧그렸다. 그 말을 듣던 나는 한창 ‘T력’이 발달하던 시기였고, 아버지의 말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술에 기대어 현실을 벗어나려는 그 태도가, 한가한 말투와 함께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으를 거라는 고정관념도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할 때마다 혐오감이 올라왔다. 나도 저렇게 될까 봐, 게을러질까 봐, 두려웠다. 20대 중반 즈음 나는 나를 정말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여섯 시면 마당에 나가서 잡초를 뽑으셨어. 전날 술을 드시고도 말이지.” 그 말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나는 근면함과 할아버지를 한 번도 연결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서도 본 적 없는 속성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할아버지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그것이, 내가 나를 조금은 긍정해볼 수 있었던 첫 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