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샤브샤브, 매운 낙지

아버지를 이야기하려면 할아버지를 보아야 한다

나의 조부모 가운데 가장 먼저 돌아가신 분은 친할아버지였다.


이 문장을 쓰자마자 눈물이 맺힐 만큼 내게 할아버지는 커다란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MBC PD셨다. 대학가요제 초창기 멤버라고 하신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언제나 자랑스러웠다. MBC 동문 전화부에 할아버지가 나오는 것도 자랑스러웠고, MBC 방송국에 데려가서 방청 나들이를 시켜주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중학교부터 대학교 초년생까지 한동안 내 꿈은 PD기도 했을 정도로, 할아버지는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치셨다. (대학교에서 처음 제대로 사귀었던 사람이 MBC PD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게는 매우 기묘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랬던 할아버지와 더욱 자주 만나게 됐던 계기가 있다. 중학교 시절 우리집이 잠시 어려웠을 때에 할아버지가 매주 나와 동생을 만나러 오셨기 때문이다. 혹시나 밥이라도 잘 못 먹을까봐 매주 토요일이면 점심을 사주시곤 했다. 일산의 어느 한 백화점 앞에서 항상 만났었다. 가장 많이 사주셨던 음식은 피자였다. 매번 용돈도 쥐어주셨다.


나는 그 시기가 그렇게 애틋했다. 그래서 친가와는 계속 친밀하게 지냈던 것 같다. 신촌으로 대학을 가면서는 반대로 내가 목동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갔다. 매달 어느 평일, 수업이 일찍 끝난 날이면 친가에 들렀다. 그때는 피자가 아니라 매번 샤브샤브를 먹었다. 지금까지도 나의 최애 음식 부동의 1위다. 할아버지도 샤브샤브를 좋아했던 걸까? 어른들은 항상 아랫 사람들을 맞춰주시기에, 나는 그분들의 취향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학년이 좀더 올라가면서는 '착한낙지'라는 곳에 데려가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오징어볶음밥을 좋아하는 나는, 여기서 먹는 매운 낙지볶음밥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그즈음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즈음이셨다.


대학교 4학년 때였나? 할아버지댁에 가는 주기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ㅇㅇ이는 왜 요즘 안 오냐는 이야기를 하셨단다. 그 전화를 받고 친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등교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는 아침을 드시면서 속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에 심혈관 수술을 받으셨다.


가족들과 친척들은 병문안을 갔다. 병문안을 갔을 때에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계셨다. 시사에 진심이다. 그때는 김정남이 피살됐던 시기였다. 할아버지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한쪽 발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버지에게 의료소송을 알아보라고 주문하셨다. 참 철저하신 분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마지막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에게서 이상 증세가 나타났고 뇌출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우리 가족들을 모아두고 설명을 하던 그 방이 아직도 생각난다. 쌈닭 기질을 발휘해 의사에게 이것저것 따지던 기억도 난다.


뇌사 상태가 되어도 귀는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연명 치료를 끝내기 전에 귀에 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시절 어려울 때 피자를 사주셔서 감사하다고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원래 뇌사 상태이신 분들은 눈물이 자주 고이고 흐르곤 한다. 그래도 나는 그냥 그게 위로가 됐다.


할아버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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