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실력
초등학교 시절, 일산의 학원가 건너편에는 만화책과 비디오를 잔뜩 빌려주는 대여점이 있었다. 주말이면 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그곳에 우리를 데려가셨다. 만화책과 영화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유독 열심히 읽으시던 책이 하나 있었다. 미스터 초밥왕.
최강록이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것처럼, 아버지도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다. 즐기셨고, 감각적으로 해내셨다. 내가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상식 중 하나는 ‘아버지들은 모두 요리를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커가면서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유독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던 집밥 메뉴가 몇 가지 있다. 어머니의 오징어볶음밥과 빨간국, 그리고 아버지의 갈비찜과 따로국밥. 시청과 서소문 일대의 언론사에서 회사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면서 동네 맛집을 탐방하셨고, 맛있게 먹은 음식은 꼭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셨다. 대충 감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셨는데도, 항상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집의 대표 메뉴가 됐던 음식이 따로국밥이었다.
영국 유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요리하는 내 모습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도 계량 없이 손맛을 믿으며 이것저것 시도했고, 제법 괜찮은 맛이 났다. 자신감이 생겼고, 요리가 즐거워졌다. 아, 내가 이 부분도 아버지를 닮았구나 싶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 가족은 한동안 아버지가 만든 초밥만 먹었던 때가 있다.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몇 달뒤 아버지가 퇴사 선언을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셨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셨을까? 바로 초밥 장사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서 미국이나 캐나다에 이민을 가는 사람들은 으레 일본 음식점을 열곤 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초밥을 배우기 위해 초밥 학원을 다니셨다. 매일 연습하시던 초밥이 우리 가족 식탁에 올랐고, 우리는 감사히 먹었다. 돌이켜보면, 대여점에서 열심히 읽으시던 미스터 초밥왕이 그때 현실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때 미스터 초밥왕을 떠올리시면서 초밥을 만드셨을까? 궁금하다.
우리의 이민은 무산됐지만 나는 현재 이민을 오듯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고 있다. 초밥 가게를 하진 않지만 요리를 매일 해야 하기는 한다. 한국과 달리 배달 음식이 발달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엔 요리를 잘 못하고 있다. 장기 휴가를 쓰느라 밀린 일들을 미친 듯이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서 사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일 장을 보러 가야겠다. 요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