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8월 1일은 ‘파차마마의 날(Día de la Pachamama)’이다. 라틴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에서만 존재하는 자연의 여신 ‘파차마마’를 기리는 날이다. ‘파차마마(Pachamama)’는 단순히 대지의 여신을 넘어, 세상과 우주, 그리고 시간을 아우르는 존재로 이해된다. 이 날을 시작으로 8월 한 달 동안, 볼리비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페루, 에콰도르, 칠레, 콜롬비아의 케추아와 아이마라 공동체에서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사와 기원을 담은 다양한 의식을 치른다.
흥미로운 점은 볼리비아가 동양 못지않게 샤머니즘의 뿌리가 깊은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의 점집 골목을 연상시키는 거리도 있고, 전통 신에게 물건을 바치며 소원을 비는 기념일도 많다.
그 가운데서도 파차마마의 날은 가장 큰 의례 중 하나로, 단순한 민속 행사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날이다. 파차마마의 날은 ‘아니(ayni)’라 불리는 상호보살핌과 보답의 원리를 중심으로 한다. 땅이 우리를 살리는 만큼, 우리 또한 땅을 돌보아야 한다는 약속이자, 다음 세대에 전해줄 관계의 회복이다.
내가 사는 곳 근처, 해발 3,600미터의 고지대 엘알토에서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 파차마마에게 한 해의 풍요와 보호를 감사하고, 새로운 소망을 빈다. ‘야티리(yatiri)’라 불리는 샤먼과 ‘아마우타(amauta)’라 불리는 지혜자들이 의식을 이끄는데, 코카잎(kintu), 감자와 곡물, 과일, 와인, 라마의 피와 지방까지 다양한 제물이 준비된다. 이 제물은 ‘메사 두세(mesa dulce, 달콤한 제단)’라 불리며 향과 함께 태워 재로 만드는 것이 관례다. 불에 올리기 전 술을 뿌려 축복하는 ‘차야(ch’alla)’를 거치고 나면, 연기와 함께 올라간 소원은 하늘과 대지를 거쳐 파차마마의 품에 닿는다고 믿는다.
나는 이번 파차마마의 날에 해발 2,800미터의 비교적 낮은 지역인 칼라코토의 한 파인 레스토랑에서 의식에 참여했다.
이곳에도 야티리가 찾아와 우리에게 의식의 절차를 알려주었고, 각자의 식탁 위에 사탕과 술이 놓였다. 그것이 파차마마에게 바칠 메사 두세의 재료라는 사실을 모르고, 나는 동료가 건네는 대로 사탕을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뒤늦게 웨이터가 다가와 “그건 신성한 제물이니 먹으면 안 된다”고 면박을 주었고, 나는 머쓱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본격적인 의식 전에 야티리는 우리에게 코카잎과 양털 같은 것으로 어떤 모형을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기로 싼다. 이후 손을 올린 채 기도를 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꿈과 미래에 대하여 기도했다.
이후 우리는 보자기를 들고 레스토랑 앞마당에 나가 장작불 위에 올렸다. 그 위에는 죽은 새끼 라마의 시체가 놓였는데, 파차마마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했다. 자연의 여신 앞에서 자연을 거스르는 듯한 이 제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야티리는 살아있는 라마를 죽인 것이 아니라 유산된 라마를 이용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길이 오르고, 메사 두세와 라마가 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둘러서서 바라본다. 그 순간 내 옆에 있던 멕시코-볼리비아 국제 부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사람을 이렇게 바쳤대요. 영화로도 나와요. 코끼리들의 묘지(El cementerio de los Elefantes)라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심청전의 비극 같은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존재했다는 말에 숨이 막혔다.
직장 동료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2008년에 개봉한 유명한 볼리비아 영화라고 한다. 다만 파차마마에게 바치는 의식이 아니라 알콜 중독자들의 자살 방식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엘알토 끝자락에 빈민가에는 ‘코끼리들의 묘지'라는 장소가 다수 존재했다. 이곳에서 ‘프레지덴셜 스위트(Suite Presidencial)’라 불리는 더럽고 황폐한 방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끝없이 들이켜고, 달고 좋은 음식들을 실컷 먹은 뒤, 스스로를 불태웠다. 그렇게 자신을 소모하며 대지로 돌아가는 행위가 파차마마에게 자신을 온전히 돌려보내는 일로 여겨졌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이것은 볼리바의 사회적 문제였고 당국은 점점 심각해지는 알코올 중독률과 이와 얽힌 비극적인 죽음들을 막기 위해 이 공간들을 하나둘 폐쇄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채로 파차마마의 날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