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한국에 들렀을 때 두 번의 강연을 했다. 그중 하나는 내가 대학 시절 수강했던 대형 교양 강의에서였다. 2017년, 벌써 8년 전 여름 계절학기에 들었던 수업이다. 나는 그 강의를 듣고 8개월 뒤, 홀연히 페루와 볼리비아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 다시 그 강의실에 선 내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 백여 명의 학생 중 단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8년 뒤 라틴아메리카에서 실제로 일하게 되기를. 마치 그때의 나처럼. 수업이 끝나고 다섯 명가량의 귀여운 학생들이 찾아와주었고, 나는 라틴아메리카의 매력을 정성껏 전해주었다.
나는 실제로 탄자니아에서 근무할 때보다 볼리비아에서 더 큰 사랑을 느끼고 있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대학생 시절, 대체 어떤 우주의 힘이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걸까?
시차적응, 과로, 몸살에 휩싸인 오늘. 아픈 몸을 이끌고 친구들의 부름에 따라 와인 축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문득 이유를 깨달았다. 여기에서는 내가 나여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도, 춤을 춰도, 웃고 울어도, 아무도 특이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드러내라고 말해준다. 감춰야 한다고 배워왔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축제가 된다.
볼리비아에서 살아가며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이곳의 축제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축제는 이 땅 사람들에게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창구이자,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무대다.
볼리비아는 매주 크고 작은 축제로 가득하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3일 동안 와인 시음 행사와 콘서트를 연다. 이전에는 낮부터 새벽까지 즐기는 박물관의 밤 행사도 있었다. 암환율이 공시 환율의 3배가 치솟는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이 직접 거리 콘서트를 열었다.
직장 동료가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쪽 길엔 휘발유 부족으로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건너편에선 전통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었다고. 이곳에서는 위기와 축제가 공존한다.
축제에서 친구들은 내 손을 잡고 춤을 알려준다. 발을 옮기는 법, 손을 흔드는 법, 나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그러면서 말한다. “너는 네 몸을 사랑해야 해.” 경제학자이자 연극 배우인 나의 절친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단순히 춤을 잘 추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을 숨기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는 메시지다.
실제로 이곳의 가장 큰 축제인 카니발은 오랫동안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이었다. 드랙 원주민들은 카니발에서 처음으로 여성 복장을 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축제는 일상의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도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나 또한 여기서는 나 자신을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끝까지 나를 무대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집에 가려 하면,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과음을 한것 같아서 걱정하면, 오히려 더 마시라고 한다. "Open your mind!!!" 오늘도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을, 이 사람들은 더 극대화하라고 부추긴다. 그런 진심이 귀엽다.
이 집 아이들이 조르니 당분간은 함께 있고 싶다.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필요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몸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