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2016년 1월, 그 이후로 김기자와 나의 인연은 어느덧 9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채웠다. 우리의 첫 만남은 대학교 토론학회에서, 면접관과 면접자로서였다. 그는 개인 면접의 면접관이었고 나를 좋게 평가해주었다. 내가 학회에 입회한 뒤 그는 내 개인 면접 점수가 동기수 가운데 1위였다고 조용히 언질해주었다(나의 잦은 지각과 끊임없이 논쟁을 유발하는 성격을 보며 지금은 나에 대한 평가가 재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호의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토론학회에서의 인연 중 단짝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기자를 선택할 것이다.
김기자는 토론학회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였다. 나보다 두세 기수는 높았고, 거의 모든 토론 세션에 빠짐없이 패널로 참여했다. 그는 학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사람이었으며, 안정적인 스피치 덕분에 교차검증이라는 토론 기술에도 능했다. 하지만 그의 차분한 말투는 즉흥적인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션 준비 과정에서 뒤섞인 생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훑어본 뒤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는 토론 세션 그 자체보다 그 고민의 과정을 더 사랑했던 것 같다. 그와 한 편이 되어 준비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토론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법리를 정신없이 풀어헤쳐놓아 우리 자신마저도 논점을 잃고는 했지만, 그런 광의의 논의 과정은 그의 깔끔한 토론 시트 템플릿에 채워넣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와 낭만을 쫓아 준비하던 '고전 읽기 토론 대회'도 생각난다. 영국의 가난한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의 삶에 정신없이 함께 빠져들다보니 별을 좇는 삶을 어느덧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회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세상의 모든 주제를 풀어놓고 이야기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그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를 포함해 네 명 정도의 작은 단톡방이 있었는데, 매일같이 뉴스 기사를 올리고 토론을 이어갔다. 희한하게도 많은 부분에서 그와 나는 유사한 사회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사고 방식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김기자와 대화하면 내 머릿속의 흩어진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감성적으로 옳다고 믿던 것들도 그는 논리적인 언어로 다듬어주었다. 덕분에 세상을 따스히 보고 싶으면서도 논리력에 부족함을 느낄 때, 나는 그의 언어를 많이 빌렸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단톡방에서 종종 부딪히기도 했다. 나는 김기자가 나와 같은 전제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 채, 사회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 규범적 옳고 그름보다 방법론에 초점을 맞춘 제안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방법론은 때로 윤리적 규범을 거스르는 전략을 수반하기도 했고,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비윤리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생각까지도 터놓고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그를 나와 너무 닮은 사람이라 착각해 선을 넘은 적도 있지 않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만났다. 이런 인연이 있을까 싶다. 독서모임, 웹사이트 개발 사이드 프로젝트, 이슈 공부 모임 등 여러 소모임에서 늘 함께였다. 어딘가 주파수가 잘 맞았다. 공감력과 상상력, 논리력을 바탕으로 서로가 실현하고 싶은 일을 동행했다. 생각의 회로가 비슷한 덕에 대화는 물론 이니셔티브를 실행할 때도 손발이 잘 맞았다. 무엇보다 김기자는 언제나 튀어나가는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주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그와 대화하고 활동하면 나의 생각과 상상의 범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첫 직장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공공기관과 비슷한 곳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지금의 호칭 그대로 한 언론사에 기자로 합격했다. 그곳은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애정했던, 그리고 나 역시 가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무엇보다 김기자와 이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언론사는 극단적이거나 기시감 있는 프로파간다 대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제3의 시각을 전하려는 곳이었고, 김기자는 그 철학을 그대로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서 직업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가 늘 대견했다. 내가 그의 부모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에서 언제나 자랑스러운 자식처럼 느껴졌다.
최근 그는 한 달 동안 지방에 머물며 작성한 르포형 기획 기사를 내게 보내주었다. 기사를 읽는 내내,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는지 생생히 느껴졌다. 한 문장, 한 장면마다 그가 직접 부딪히고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었고, 취재 대상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깊이 끌어안은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가 기획 기사 중간 중간 배치해둔 시구들이 그런 그의 노력을 증명해주었다. 국문학과인 그가 맘 속 한 켠에 담아둔 시와 취재 대상의 이야기를 연결시킬 때에 얼마나 혼자 가슴 아파했을까. 사실 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한 주제 앞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깊이 파고들어 고민하고, 생각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무엇보다도 애정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 기사를 읽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어떻게 매 순간 그렇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 성실함과 따뜻함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그 답을 알고 싶어, 9년의 인연 끝에 처음으로 나는 그에게 직접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