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차쌤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다시 험지로 나갈지, 아니면 평온한 이모작을 시작할지. 그는 전쟁터와 난민촌에서 배운 것들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지만, 동시에 텃밭과 닭, 음악과 그림이 있는 평화로운 삶을 꿈꾼다. 두 길이 모두 끌리는 탓일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차쌤의 마음은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듯하다. 그래서 물었다. “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오셨는데… 이제는 조금 쉬고 싶지 않으세요?”
쌤이 편안함을 느끼는 안전지대는 뭐예요?
내가 쓸모가 있다고 느낄 때가 그래도 저는 제일 행복한 거 같아요. 저는 매일 해야 할 일을 열심히 적어놓고 그대로 살려고 되게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제일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는 하루 종일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고 느낄 때예요. 그런데 해외에 있으면 매일 새로운 걸 쉽게 배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뭔가를 하고 있거나, 성취감을 느끼거나, 배우고 있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내가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때요.
하루종일 앉아서 유튜브를 본 날이 있었거든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요. 그 날은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어요. 결국 일기장에 열심히 변명을 썼죠.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 더웠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하면서 구구절절… 그런데 뒤집어 보면, 저는 매일 뭔가 셀프 컨트롤이 가능한 날, 발전했다는 느낌이 드는 날, 계획대로 잘 흘러간 날이 가장 만족스러워요.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 어떤 공동체를 만들며 살고 싶으세요? 10년 뒤의 삶을 그려본다면요.
저는 아직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서핑도 배우고 싶고, 낚시도 해보고 싶어요. 적어도 한 5년 텃밭을 운영해보는 게 소원이기도 하고. 그리고 닭들도 길러보고 싶어요. 닭이 알을 더 이상 낳지 않으면 보통 잡아먹는다고 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닭들을 다섯 마리쯤 모아 ‘닭 노인정’ 같은 곳을 만들어서, 햇볕을 쬐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소. 돼지, 닭 같은 가축들은 한참 청년일 때 도살당하잖아요. 하지만 그 동물들의 중년, 노년이 궁금하고 지원하고싶어요.
또 그림도 많이 그리고 싶고,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고, 기타도 잘 치고 싶고…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아요. 10년 안에는 그런 것들을 꼭 해보고 싶어요. 배구도 더 잘 하고 싶고, 요즘은 잘 못하고 있지만요.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아요. 좋은 책과 영화, 동물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얼마 전에는 페타치즈로 파스타를 만들어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아, 언젠가 쌤 사는 동네랑 제가 사는 동네가 겹쳐서 이런 생활적인 면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집에 초대해서 요리도 해드리고요.
응, 좋아요. 혹시 고양이 좋아하세요.
아니요, 저는 개가 좋아요.
괜찮아요, 저는 사실 털 달린 건 다 좋아해요. 사람들이 저보고 동물이 아니라 가축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웃기지만 맞는 말 같아요. 평화롭게, 더불어 살고 싶어요.
그럼 평화롭게 사는 것과 전쟁터에 가는 건 쌤한테 양립할 수 있는 건가요?
전쟁터에 가는 건 공부를 하기 위해서예요. 반대로 평화롭게 사는 건 제 인생을 살아내는 거고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할 수는 없지만요. 공부는 거기서 하고, 다시 돌아와서 평화롭게 살면 되니까요.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은 사실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고요. 우리는 늘 인류가 일해 온 역사만 보고, 당연히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 안에서 자아를 성취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결국 인간은 그냥 새들이나 비둘기처럼, 말처럼 단순히 존재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거였어요. 우리는 은퇴 때까지 일을 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삶을 살 수 있다는 사회적 관념을 믿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어쩌면 원래 인간의 가장 큰 임무는 단순히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요즘 계속 마음에 남아요. 저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하는 걸 좋아하고, 다시 일을 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건 프로그래밍된 사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계속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애쓰기보다, 빨리 텃밭을 가꾸거나 내 삶을 찾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전히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네, 그렇지만 저는 제 삶에 자부심이 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삶의 궤도를 따라간 기성 세대와는 다르게 행동한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든 제 길을 찾아 나왔거든요. 마흔 초반의 지금, 꽤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발자취를 본 더 어린 세대가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고, 선택에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도 자부심을 느껴요. 우리 아버지는 “넌 참 좋겠다, 책임질 일이 없어서”라고 하시지만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이에요. 대안적인 삶은 언제나 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차쌤은 내 또래인 30대에게 이정표 같은 존재다. 그는 모두가 ‘No’라고 말하는 길을 기꺼이 걸었고, 그 길 위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자신의 삶을 일구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위험을 무릅쓰고 선택한 삶도 결국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평안한 하루하루 역시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차쌤의 발자취는 단순히 한 사람의 커리어를 넘어, 더 자유로운 선택을 꿈꾸는 뒤따라가는 세대에게 분명한 희망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