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김기자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어떤 주제든 몇 시간이고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여러 소모임을 함께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이어진 건 독서 모임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지적, 정서적 충만감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볼리비아에 와 있어서 그 모임에 나갈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내 일상을 지탱해주던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준 시간이었으니까. 김기자와의 대화는 그만큼 특별하다.
오늘은 뭐 했어?
내일 독서 모임이 있어서 그 책을 좀 읽다가 왔어.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와인 바로 넘어 가서 이북(e-book)을 읽었지. 프랑스 문학인데 제목은 『그녀를 지키다』야. 언니도 읽어봐,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책이 참 좋아.
너에 대해 설명한 글을 읽곤 무슨 생각이 들었어?
나도 내가 언니와 되게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언니의 글에 공감이 갔었어. 나랑 언니는 영혼이 본질적으로 닮았다고 항상 생각했거든. 토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하나는 논쟁에서 이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진실 자체에 관심 많은 사람들. 우리는 두 번째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난 후자인 사람들을 토론학회에서 거의 못 만났던 것 같아. 한 삼 년 활동을 했지만은 몇 명 못 봤다고 생각을 했거든.
나도 너랑 어렴풋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었거든. 너가 언어화해주니까 좋다.
사실 우리가 논문 소모임, 독서 모임, 웹사이트 만드는 거, 그런 걸 같이 했던 이유가 둘 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공유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했거든. 토론에서 이기는 것은 항상 후순위였고, 그보다는 그걸 통해서 내가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는지,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 그래서 언니도 토론 이후에 '애프터 디베이트'도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런 대화들을 항상 좀 즐겼잖아. 우리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을 했었어.
토론학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면, 너는 어떻게 토론학회에 지원하게 됐어?
나는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은 대학교를 오고 싶었던 제일 큰 이유가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던 거 같거든. 사실 나한테 똑똑함과 선함이 항상 좀 같이 가는 개념이었어. 똑똑하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온전히 선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입학을 하고 나서, 학교에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 그래서 1학년 때에 방황을 하다가 기숙사 벽에 붙은 토론학회 공고문을 보고 지원을 했지. 항상 좀 그런 집단을 찾아가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
1학년 때는 어떤 방황을 했어?
여러 가지인데 하나는 내가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론에 있어서 너무 미숙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때는 제대로 된 대화를 오래 이어가는 법도 잘 몰랐을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했어. 그리고 처음에 국문과 단톡방을 들어갔는데 맞춤법을 틀리는 친구들도 있는 거야. 다들 지성인들이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성적 맞춰서 국문과에 온 사람도 많았어. 내가 추구했던,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학교 안에서도 극히 소수라는 걸 깨닫게 되고 나중에는 좀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 여러모로.
토론학회 처음 들어가곤 어땠어?
내가 원하던 공동체이긴 했는데 여전히 내가 기술적으로 관계 맺는 법을 안다거나 혹은 인격적으로 성숙하다거나 그런 상태였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초반에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지. 마지막 한 두학기 쯤에 이르러서야 그런 것들을 깨우쳐서 찾았던 것 같아.
우리가 다 그랬던 것 같아. 솔직하게 대화를 많이 하니까 정말 부딪힐 일도 많고. 너는 토론학회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 애정을 담았어?
내가 처음에 들어갔을 때 기억이 나는 세션이 독서 토론이야. 내가 거의 한마디도 못했거든. 내 사고력이 빈약한 거야. 그 조에서 선배가 나한테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은 그래도 생각나는 걸 자유롭게 얘기해보라’고 해서 되게 창피했던 기억도 나.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거든. 아마 그 회기에 내가 토론 패널을 제일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해. 나름대로 생각도 하고 말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했어. 그래서 단기간에 늘었다고 생각을 하거든.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사이트를 나눠줬던 사람들도 있었고. 나 자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껴서 토론을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공동체를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
너는 계속 부족한 점을 찾고 성장하려고 하는구나.
그러게, 토론을 좋아해서 어쨌든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는 해.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노력을 해온 거니까. 나의 관점을 가지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해석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분석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것. 사실 되게 드문 종류의 일이잖아. 나는 이런 지식 노동 자체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거든. 솔직히 말하면, 처음 기자 준비를 시작했을 때도 칼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 내 관점을 세상에 제시하는 것이 사회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었지. 왜냐하면 나는 늘 열심히 생각하고, 깊게 고민해왔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다소 오만했던 것 같기도 해. 그래도 이런 지식 노동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연차가 쌓였을 때는 내 관점들이 하나의 의미 있는 지표로 여겨질 만큼 깊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지식에 대한 갈망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고 그것이 직업으로까지 이어진 거네.
응, 관련해서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순간은 초등학교 때야. 초등학교 6학년 때 찬반 토론을 했거든. 주제가 기억이 잘 안나는데 토론 과정에서 대화가 오가는 게 재밌었던 기억이 나. 중학교 때는 수업에서 틀어주는 ‘정의란 무엇인가’ 강연회 동영상을 봤어. 내가 그걸 보고 너무 너무 감명을 받은 거야. 그래서 친구들한테 ‘공리주의와 다른 윤리적 관점 중에서 무엇이 더 바람직한가?’ 이런 얘기를 하려고 여러 노력을 했는데 친구들이 아무도 안 받아주는 거야. 나는 ‘공리주의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데 애들이 다 ‘아 그렇구나’하고 마는거야. 그때 좌절했던 기억이 나거든. 그때 찾은 것 같아. 내가 무얼 재밌어하고 좋아하는지. 지적 호기심 자체는 살면서 꾸준히 있었다고 생각해. 입시 때문에 그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 자체는 늦게 왔던 것 같아. 그래도 내가 원래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옛날부터 인지를 하고 있었네.
중학교 시절 공리주의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아 풀이 죽었던 김기자의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그러나 그는 토론학회를 거치며 점차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갔고, 그 과정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며 성장해왔다. 부족함을 채우려는 진지한 태도와 꾸준한 고민은 지금의 김기자를 만든 힘일 것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지적 호기심을 좇아가며 어떤 길을 걸어갈지 생각하면, 자연스레 흐뭇함과 기대감이 함께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