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무가에게 기독교란 (4)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지안무가는 내 주변에서 그 누구보다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다. 그를 만난 지난 10년 동안 그는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다. 나는 젠더 문제에 천착하면서 교회와 거리가 멀어졌다. 성경의 본질을 설명해주시는 귀한 목사님들을 만난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편향적 담론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에 누구보다 진심인 지안무가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그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어. 너에게 중요한 부분이니까. 너에게 기독교란 뭐야?
글쎄, 뭐라고 해야 하지? 네가 질문 목록을 미리 보내줬을 때 ‘이건 어떻게 답하지’ 싶었거든. 나도 잘 모르겠어. 확실히 ‘주입’ 비슷한 요소는 있어. 어릴 때부터 접했으니까. 그러니 일종의 피드백 루프 같은 게 생기지. 이 주제 관련된 콘텐츠가 요즘들어 가끔 내 눈에 들어와. 퀴어로서 교회 안을 헤쳐 나가는 건 흥미로운 일이니까. 그래서 기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같은 비디오 에세이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라고.

최근에 봤던 영상에서 공감했던 비유가 하나 있어.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잖아. 이를테면 ‘기쁨’이나 ‘두려움’. 그런데 누가 와서 “기쁨이나 두려움은 실재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무슨 소리야?” 하겠지. 왜냐면 네가 삶에서 무언가를 처음 겪고 그때 느낀 몸의 반응에 ‘기쁨’이나 ‘두려움’ 같은 이름을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배워서 붙였고, 그 이름이 이후 그 감정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굳혀버리니까.

교회를 어릴 때부터 다니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는 거야. 세상을 보는 렌즈가 성경 용어 같은 걸로 채워지기 시작하면, 그 단어들에 감정이 각인돼. 내가 교회를 다녔던 방식,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방식, 한국을 이해하려고 했던 방식, 한국 친구들이나 탈세한 학원 원장에게 참을성을 보였던 일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나는 꽤 많은 ‘성경적 관점’으로 합리화했던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규범에 맞춰 묶어두기도 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 ‘참음(patience)’이 진짜 내 역량에서 나온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하나의 가치체계를 교회에서 받아와 갖다 붙였던 것 같기도 해.

나는 성인이 되고 생각이 성숙해진 뒤에 교회를 처음 간 게 아니잖아. 그래서 내 안 어딘가에는 그 촉수 같은 게 남아 있어서, 어떤 일이 닿으면 자동반사처럼 그쪽으로 먼저 반응해 버려. 그래서 지금 이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워. 지금은 딱 갈림길에 서 있는 기분이라, 뭐가 ‘진짜’인지 가려보려는 중이거든. 방금 말한 그 영상이 말한 게 내가 교회를 대하는 방식에 더 가까운 건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건지. 그래서 어느 쪽으로도 단정해서 말하긴 어려워. 여기서 멋진 말 한마디로 ‘기독교는 나에게 이런 것이다’라고 하면, 그건 지금 내 상태에선 진실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깊은 해석을 나누기 어려워.


내게는 이미 너의 고민이 깊게만 느껴지는데. 내가 정확히 이해한 건지 모르겠긴 해.

아, 그래? 그저 솔직하게 말하는 중이야. 좀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안에서 어떤 감각을 느낄 때, 그게 정말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가 느낀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어릴 때부터 교회에 노출돼서 성경의 관점으로 보게 되니까 그 프레임으로 ‘자기충족’시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내가 해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성경적 관점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을 바라보게 되니까, 그건 학대(abuse)라고 문제를 삼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을 종교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데에 바쁜 거야. 그 행동 자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해석에 어떤 그림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이게 참 어려운 문제야. 자기 보존이랑 기독교적 관점이 자꾸 충돌하는 것 같거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기독교적인 시각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어. 힘든 상황을 너무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내가 우울감에 빠지더라고.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생각들을 단순화시키고 있어. 나를 흔드는 것들은 내 공간에서 퇴장시키고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에 집중해. 그런 태도가 기독교적 관점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또 다른 주제인데 젠더 문제도 나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소인 것 같아. 사실 기독교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일부 사람들이 젠더를 이상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잖아.

맞아, 결국 너와 내가 같은 방향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응, 특히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너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어떻게 너는 계속해서 기독교적 관점을 유지할 수가 있어?

이제는 교회와 인구 집단(demographics) 간의 관계 문제인 것 같아. 요즘 교회라는 게 사회, 심지어는 정치와 너무 밀접하게 얽혀 있어. 사회나 정치, 정책 속에서 인구 집단이 평등하게 대변되지 못하고 있잖아. 그래서 퀴어인 나로서는, 당연히 교회를 다니는 것이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모르는 게 아니야. 그럼에도 교회에 나가면서 여전히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아까 답을 그렇게 시작한 거야. 내가 아직도 교회에 다니고 있는 이유 중 일부는, 어릴 때부터 길러진 습관 덕분인 것 같아.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조차 모르겠어. 교회에 가야 할 것 같으니까 가고, 그러다 보니 계속 가야 할 것 같은 걸까? 아니면 내가 교회에서 실제로 무언가와 공명해서 가는 건지? 그 두 번째가 사실 더 적절한 이유겠지.
근데 한국에서 배운 게 있어. 아까 말했듯이, 젠더 문제랑도 이어져. 교회가 지금은 사회에서 이미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목사님과 퀴어 정체성에 대해 얘기해야 했던 적도 있었어. 한국에서도 똑같더라.

그래서 여전히 교회를 가야 하는 올바른 이유와 방식이 뭔지 찾아가고 있어.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건 결국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잖아. 우리를 위해 못 박혀 희생한 예수님이 있으니 감사하다는 생각이 아직도 내겐 유효하단 말이야. 그래서 신앙이라는 개념 안에서는, 그 한 가지 사실에 매달려 있어. 교회와 인구적 특성, 특권 이런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교회를 다니는 게 여전히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습관 때문인지 혼란스러워.


너 지금 마치 『데미안』의 싱클레어 같다. 카인의 표식이 새겨졌구나.

책을 읽어봐야겠다. 요즘 나는 완벽주의적 태도를 내려놓으려 해. 주일인데 교회 가기가 힘들면 가보지 않으려고. 그게 내가 교회에 가는 이유를 진짜로 지켜내는 방법 같아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왜냐면, 난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한다고 해서 얻을 게 많은 사람이 아니거든. 최근 미국에서 여성혐오와 동성애혐오 발언이 많아지고, 그게 남성들의 교회 참여 증가와 맞물려 있다는 정보를 접했어. 그러니까 교회는 여전히 가부장적 구조를 강화하고, 남성들에게는 편안한 공간이 되는 거지. 그래서 교회 출석률은 올라가고, 겉으로 보면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그래서 한국 교회를 보면서도 계속 갈등하는 거야. 교회가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저렇다고 규정하는 구조 속에 있는 걸 보니까. 그러다 보니 내 위치가 뭔지 모르겠는 거야. 외국인 게이인 내가 여기서 차지할 자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결국 난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는 수밖에 없는 거지. 교회를 통해서라기보단, 나 혼자서. 난 교회에서의 공동체 경험을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일 뿐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사실 잘 맞는 교회를 찾는 것을 중시해. 목사님의 설교에 내가 정말 감명받는지 보는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 ‘날 감동시켜봐라’ 이런 태도로 교회 가는 건 좀 이상하잖아. 난 최대한 기대 없이 가려고 해. 이미 게이라는 ‘실수’를 했는데, 또 감동까지 바라는 건 좀 과한 거 같잖아? 농담이지만, 알겠지? 난 지금도 갈림길에 서 있어. 아마 호주에 가면 당분간 교회를 쉬어볼 수도 있어.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쉬고 싶었거든.


그럼 10년 넘게 교회를 다닌 거네?

응. 베일러대에 다닐 때 교회 안 가보려고 했는데, 하필 거기가 교회 안 가기 제일 어려운 곳이더라.


베일러대는 예배가 정말 많았잖아. 여기저기서 락밴드가 찬양을 하고 축제를 벌였지.

맞아. 그래서 난 일요일 예배는 안 가야지 했는데, 그때 한인학생회를 통해서 한인 교회 목사님을 알게 된 거야. 그게 계기가 됐지. 교회 한국어 수업에 초대해주셨거든. 한국어 수업 전에는 점심 시간이 있었어. 목사님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하시더리고. 점심 시간 전엔 예배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주일 예배에 나가게 됐어. 그래서 졸업 마지막 해에 간증도 했어. 결국 하나님이 계속 나를 붙잡으셨다고. 그리고 한국 와서는 1년 정도 교회에 안 갔어. 사이비를 가게 될까봐 걱정도 됐고. 그런데 영어학원에서 일할 때 동료 중 한 명이 목사님의 딸이었어. 그래서 또 교회에 가게 됐지. 봐봐, 결국 같은 패턴이 반복된 거야. 항상 누군가의 인연 때문에 교회를 가게 돼. 하지만 이제는 성숙해졌어. ‘교회에 가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됐지. 호주에 가면 이번에는 좀 다른 태도로 교회를 마주하게 될 것 같아.


호주에서 불교도를 만나는 거 아냐? (웃음)

그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한국에서 성적 지향을 찾았잖아. 대학시절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제는 내 성적 지향에 대한 정체성을 인지한 채로 신중하게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할 거야.


좋다. 아까 한국에서 목사님과 나눴던 퀴어에 대한 대화는 무엇에 관한 거였어?

교회가 가족을 꾸리는 것을 독려하잖아. 그 개념에 목사님이 진심이셨어. 아이들과 가정에 대해 말하시고, 그게 얼마나 신성한 일인지 말하곤 했거든.


그러면 게이 커플의 입양을 지지하면 되는데.

그러게, 어쨌거나 그런 목사님의 생각 때문에 5주 동안 설교 내용이 같았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으면 아이를 낳아보라고. 스트레이트지만 가족을 지금 당장 꾸리고 싶진 않은 청년 신도들도 많았거든. 그들도 설교 내용이 너무 반복된다고 느꼈어. 내가 그때 청년부 리더였어. 교회에서 회계일을 맡고 있었거든. 그래서 목사님께 의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지.


너는 어느 그룹에 가든 리더 역할을 맡고, 소수자 위치에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정말 높게 평가한다. 너의 강점이야.

오, 그 얘기를 기억할게. 어쨌거나 나는 그때 리더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그 부분을 말했어. 그런데 목사님은 내가 게이니까 동성애가 죄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의견을 냈다고 생각하신 거야. 내 의견의 요지는 설교를 다양화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퀴어로서 교회에서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하신 거야. 그래서 두 주에 걸쳐서 목사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었지. 목사님은 계속 내게 이런 질문을 하셨어. 가족에 대한 설교를 할 때 기분이 어떻냐고. 내가 생각하기엔 함정 같은 질문이었던 것 같아. 내가 죄의식을 느낀다고 답하기를 바라셨던 걸까?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좀더 기도를 한다고 답변드렸어.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셨으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묵상한다고 말씀드렸어. 그래서 이걸 위해서 목사님의 설교를 다채롭게 듣고 싶다고 말씀드렸어. 예시를 들었어. 목사님이 아이들을 키우고 계시거든. 아이들이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데, 만약에 유치원에서 매일 같은 견과류 간식만 준다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거기에 전화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이렇게 여쭤봤지. 그랬더니 목사님이 전화하실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그렇게 서로 납득시켰지.


너의 일상이 전도네. 다양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지.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거야. 정말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동시에 너는 그걸 잘하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너는 부당한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다가가고, 맞서고, 직면하는 거야. 너가 그런 직업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어. 목사님? (웃음)

음… 글쎄…


응 이건 장난이었고, 하지만 뭔가 비슷한 역할일 수도 있겠어. 메시지를 전하는 것. 너는 언어적인 능력도 뛰어나잖아. 신체 능력도 뛰어나고. 입과 몸을 동시에 활용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거야! (웃음)

그래… 아주 좋네.


자, 우리 인터뷰의 결론인가 보다. (웃음) 자, 이제 너가 잠에 들 수 있도록 보내주겠어, 안녕.

Love you boo.


Love you boo, 잘자.


나에게 신앙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교회와 성경, 그리고 기독교는 내 세계관을 열어주었던 매우 중요한 토대였다. 아마 지안무가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교회와 교회의 담론, 그리고 교인들이 한층 더 열린 마음으로 젠더 문제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 글은 논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진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겪었던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자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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