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엄마에 대하여 (0)

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나의 대학교 학과 절친. 그를 단순히 ‘엄마’라는 호칭 속에 가두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 그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새삼 경이로움을 느낀다. 철없이 장난치던 우리였는데, 어느새 한 명은 의젓한 엄마로 성장해 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에서만큼은 특별히 그를 ‘희엄마’라 부르려 한다.


엄마는 학과에서 ‘돌아이’로 유명했다. 키가 커서 눈에 잘 띄었는데, 엉뚱하고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늘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해맑은 발랄함은 그의 시그니처였다. 술자리에서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농담과 천진난만한 말장난으로 모두를 웃기고 동시에 당황하게 만들곤 했다. 그가 있는 자리에는 늘 웃음과 이야기꽃이 피었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풀려나갔다.


나는 1학년 때부터 희엄마와 ‘세트’처럼 붙어 다녔다. 쓸데없는 장난도 치고, 희한한 농담도 주고받았다. 희엄마와 나는 어딘가 엉뚱하게 어긋난 것들을 유독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 그런 상황, 그런 행동을 즐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우리 모두 진지한 대화나 관념에 집중하는 순간도 있었다. 우리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엽기적인 기억도 많다. 전공필수 과목에서는 칠판 앞으로 불려가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우리 둘은 첫 시간부터 답을 못 내 교수님께 찍혔다. 그 이후로 수업 때마다 번갈아 이름이 불렸고, 우리는 늘 칠판 앞에서 당황하곤 했다. 우리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같은 반 학생들이 낄낄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어느 날은 대화를 나누다 충동적으로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강릉 정동진에 들렀다가 부산으로 향해, 그곳에서 부산 사는 동기들과 국수를 먹었다. 모든 게 즉흥적이었지만, 그만큼 즐겁고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았다. 아마 그때의 성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얼마 전 한국에 들렀을 때, 동기 5명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결국 2차까지 간 건 나와 희엄마뿐이었다.


다만 우리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느덧 차분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갔다. 희엄마가 처음 컨설팅펌 인턴을 시작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그때 스스로를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어색하다고 했다. 어른처럼 보여야 하고 체면을 유지해야 하는 환경이 낯설고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적응했고, 컨설팅 업계에서 커리어를 이어 갔다.


이후에는 은행권으로 이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인과 얼굴도, 쌍꺼풀도, 웃음도 똑 닮은 남편을 만났다. 학과에서 붙어다녔던 우리 6명 가운데 희엄마는 가장 먼저 결혼했다. 성당에서 엄숙한 결혼식을 올리던 희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희엄마가 기도하던 장면은 분명 성스러웠지만, 동시에 그 장면이 아이러니한 시트콤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희엄마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자꾸만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어느새 희엄마는 아이까지 낳았다. 희엄마와 닮은 남편, 그리고 그 두 사람을 그대로 빼닮은 딸까지. 그렇게 똑같이 생긴 세 사람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희엄마는 나를 딸의 ‘이모’로 지명해주었다. 한국에 들렀을 때 처음 딸을 보러 갔는데 묘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순간이 내겐 몽글몽글한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남았다.


희엄마는 능숙했다. 아이의 머리를 가누는 방법도, 울음을 달래고 재우는 방법도, 기저귀를 가는 방법도 안다. 유모차를 능수능란하게 조종한다. 나도 아이와 함께 외출하면서 유모차를 끌어보았는데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 저곳 부딪혀서 아이가 놀랄까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해야 했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만약 내가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건 아마 희엄마 덕분일 것이다. 나보다 소중한 존재를 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해줬으니까.


우리는 여전히 장난꾸러기다. 딸아이의 장난감을 우리 것인마냥 신나게 가지고 놀곤 한다. 그러나 나와 달리 이제 희엄마는 분명 한 생명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 성숙함에도 단계가 있다면 그는 나보다 몇 단계 더 위로 올라섰다.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희엄마를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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