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추억 속의 장면들이 불쑥 떠오른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다니던 대학가, 기숙사 편의점에서 번개로 만나 나누던 수다들, 학교 뒷산을 기어 올라가 보던 콘서트. 내게 그 기억 속엔 언제나 ‘희엄마’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였고, 이제는 엄마가 되었다. 대학시절의 추억들과 사회초년생 시절의 선택들이, 지금의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우리는 처음에 어떻게 친해진 것 같아?
글쎄, 뚜렷한 계기가 떠오르진 않아. 그런데 너와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어. 내가 뭔가 같이 하고 싶을 때마다 너를 불렀던 것 같고, 너도 잘 응해줬던 것 같아. 신촌에서 너 고등학교 남사친이랑 같이 노래방 갔을 때, 네가 이승기 ‘삭제’를 불렀던 것도 기억나. 과 동기랑 청송대에서 성시경 콘서트를 보려고 산 뒤쪽으로 기어 올라가던 기억도 나고. 새내기 때 밥약도 너랑 자주 했었고, 너희 동네 안양에서 매운 라면집 갔던 것도 기억에 남아. 돌아보면 재밌는 기억들에 네가 많이 있더라.
맞아, 나는 우리 송도 기숙사 시절도 많이 생각나. 네가 대형 강의에 지각해서 안경 끼고 머리 질끈 묶고 후드티 입고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모습도 또렷해.
(웃음) 아, 아기가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안돼. (아기가 옆에서 인터뷰에 참여하고 있었다)
너한테 대학생 때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뭐야?
나는 연애했던 시절이 기억에 남아. 여중·여고를 나오다 보니 처음 있던 일들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 그렇지만 막상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어렵네. 너는 언제야?
나도 연애했던 기억이 귀엽게 남아 있어. 1학년 때 남자친구가 송도로 서프라이즈로 놀러와서, 너랑 셋이 같이 놀았던 것도 생각나. 그리고 대부분은 동아리 활동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아. 너도 동아리 했었지?
맞아. 동아리 활동도 엄청 보람찼어. 그렇지만 나는 동아리 활동이 전부 즐겁진 않았어. 그 동아리가 특정 산업계랑 관련이 있었는데, 그 문화가 나랑 잘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거든.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 싶더라. 그래서 오히려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을 찾게 된 계기가 됐어.
나는 내 자신이 따분하게 반복되는 루틴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치열한 삶을 지향하고. 그런데 대학생 때 여러 활동을 해보니까 이게 지속가능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 특히 결혼과 아기에 대한 생각도 있었어. 언젠가 아기를 낳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이 업계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첫 직장이었던 컨설팅에서 이직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고. 결혼하거나 아기를 낳으면 언젠가는 퇴사할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찾은 거야. 편안한 삶이 나한테 좀 더 맞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컨설팅 업계도 사실 근무강도가 높은 곳이잖아. 처음에는 그래도 발을 디딜 생각을 했던 거야?
처음에는 그런 곳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내가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컨설팅은 매번 프로젝트도 바뀌니까. 실제로도 거기서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 밤을 새서 일할 때도 하나도 안 힘들었거든. 나는 원래도 밤을 많이 새기도 했고. 저녁을 회사 사람들이랑 먹는 것도 별로 거부감이 없었고. 어떤 사람들은 저녁 먹는 게 일의 연장선이라고들 하잖아. 나는 즐거웠어.
난 그래서 ‘컨설팅은 내 체질에 맞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실제로 즐기고 있었고.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을 평생 이어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지만,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 것 같았어. 그래서 삶을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나 스스로 어떤 부분을 내려놓아야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
맞아. 결국 인생에선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아. 나도 가족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지금처럼 일하다 보면 언젠가 내 삶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들어.
나도 똑같이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애매하게 경력 쌓을 바엔 빨리 컨설팅 업계를 떠나자’고 결심했던 거지.
너는 이른 시기부터 현명하게 결정했구나.
현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르게 선택하려고 했던 건 맞아.
그런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넌 자기계발도 참 열심히 했던 사람 같아. 자격증도 많이 땄잖아. 그런데 이렇게 현실적으로 결혼한 삶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니, 의외야.
그건 내가 컨설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이기도 해. 잘 알지 못하는데도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답을 내줘야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지금 직장에 처음 입사해서 리스크 관리부에 배치됐을 때도 너무 어려워서 막막했어. 그래서 ‘전문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정확히 알고 설명하고 싶었어. 그래서 처음으로 리스크 자격증을 따게 됐고, 그걸 계기로 다른 공부들도 이어가게 됐어. 나중에 부서에서 리스크 관련 일을 하게 됐을 땐 자신감이 붙어서, 회의나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날 때도 훨씬 더 발언권을 가질 수 있었어.
너는 회사에서 어떤 이미지야?
의외로 엄청 조용하고, 공부 좋아하는 이미지 같아. 생각보다 친구도 많지 않고.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도 잘 안 하거든. 그래서 내 진짜, 장난스럽고 엉뚱한 모습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러니까. 너가 자격증도 따고 회의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발언하니까 되게 지적인 이미지였을 것 같아.
네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아. 나는 아마도 회사 안에서 항상 차별점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뭔가 더 하나라도 갖고 싶다는, 혼자만의 경쟁 의식 같은 거. 그래서 ‘전문적인 자아’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네.
희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커리어란 단순히 직장에서의 성취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 전반에 걸쳐 이어지는 선택의 연속이다. 컨설팅 업계에서 불태운 열정, 결혼과 출산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단, 그리고 흔들림 없이 이어온 공부와 전문성의 축적까지—그 모든 과정이 곧 그의 커리어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지만, 삶을 냉정하게 바라보니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더라.” 어쩌면 커리어란, 우리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려놓음이 곧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금 그의 삶은 육아에 집중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전문적인 자아로서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갈 것이 분명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