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엄마에게 선택이란 (2)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대학 시절 누구보다 개성과 성격이 분명했던 친구 ‘희엄마’. 장난스럽고 활발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던 그는 이제 결혼과 육아라는 새로운 과제를 맞이했다. 그가 마주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 어떻게 다른 모습일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회사에서 지금 남편을 만났잖아. 어떻게 처음 만났어?
같은 본부였는데 팀은 달랐어. 남편이 1년 선배라 사수처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다른 선배들보다 연차가 비슷하다 보니 더 편했고, 회사 일도 자주 물어보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가까워졌어.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귀게 됐지. 실제로 내 이상형에 가깝기도 했어. 외모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 부서 분위기 메이커였거든. 장난도 잘 치고 성대모사도 하고, 유머러스했어. 또 내가 모르는 회계 지식을 술술 설명하는데, 그 모습이 참 든든하고 멋있게 보였어.

어떻게 남편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했어?
어려운 질문이야. 사랑은 타이밍인 것 같아. 나는 결혼을 하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잖아. 직장도 바꾸고 나름의 계획이 있었지. 마침 남편도 결혼을 생각하던 시기였고, 결정적으로 나에게 없는 어른스러운 면들을 남편에게서 봤어. 예를 들어 집 계약 같은 중대사들을 처리하는 태도. 남편은 권리를 주장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협상이나 딜을 잘하더라. 나는 잘 못하는 그런 추진력 있는 모습이, ‘이 사람과 함께라면 결혼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주었어. 나와 달리 남편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 같았어.


그런 중대사를 타인과 함께 결정하는 일은 고차원의 일인 것 같아. 이전의 삶과 어떻게 달라졌어?
생각보다 고차원적인 변화는 아니야. 다만 고민해야 할 대상이 훨씬 많아졌어. 예전에는 이사할 때 회사와 가까운지, 집이 깨끗한지만 따졌다면, 이제는 아기도 있으니까 어린이집이 있는지, 또 야간 연장반까지 운영하는지를 살펴야 해. 회사에 다니니까 그런 부분이 중요하거든. 생일도 예전엔 내 가족 것만 챙기면 됐는데, 지금은 시댁 가족의 생일도 꼼꼼히 챙기고, 형님 가족과도 가까워지면서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할지 늘 신경을 써. 괜히 너무 편해졌다가 실수할까 봐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결국 내 본질이 달라진 건 아닌데, 내가 생각하고 신경 써야 할 상황들이 훨씬 많아진 거지.

나도 너와 성격이 비슷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해.
맞아. 어른이 될수록 페르소나가 늘어나는 느낌이야. 그래서 내 진짜 모습이 뭔지 나조차 헷갈릴 때가 있어.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너의 분명한 페르소나가 있어. 너는 낯선 상황에서도 먼저 다가가고, 재밌게 얘기하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사람이야. 그룹 모임에서도 네 말 한마디에 대화가 시작되고, 그걸 계기로 더 친해지잖아. 나는 그게 네가 가진 큰 힘이라고 생각해. 청소년기에도 그랬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아. 중·고등학교 때 반장을 계속 맡았는데, 원래는 스펙을 쌓으려는 현실적인 선택이었지만, 그게 내 성격처럼 굳어졌나 봐. 그리고 예전부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

너는 청소년기에는 어떤 학생이었어.
그렇다고 청소년기의 나의 모습이 계속해서 지금의 나의 모습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대학교 때에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청소년기에 나는 솔직히 공부밖에 몰랐어. 중학교 때 특목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마음을 다잡고 일반고에 들어갔지. 그러다 3월 모의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그 이후로는 더 열심히 공부했어. 그래서 학창 시절은 온통 공부로 채워져 있었던 것 같아. 대학에 와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줬어. 그리고 이상적인 가치를 좇고 살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현실적인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다만 예컨대 나는 자산을 증식하고 현실적인 준비를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격은 아니야.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는 감각에 가까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

그래도 그런 일들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건 대단한 것 같아. 나는 그게 잘 안 되거든.
내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 학생 때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공부했고, 스무 살이 되니 대학 생활을 열심히 했고, 취업할 나이가 되니 취업 준비를 했고, 결혼할 때가 되니 결혼을 준비했지. 자산을 불려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도 마찬가지야. 늘 ‘해야 할 것’을 기준 삼아 살아왔던 것 같아.

그러면 너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있어?
글쎄, 직장을 생각하면 조금 더 자유롭게 이직을 했을 것 같아.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봤을 수도 있고. 다만 지금의 삶이 내가 그려왔던 모습이었던 것 같긴 해.

혹시 너가 좋아하는 책은 뭐야?
네가 예전에 추천해준 양귀자의 모순. 그 책에서 주인공의 삶이 내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주인공의 이야기할 따라가면서 '그 사람이 무슨 결정을 할까?' 같이 고민해. 궁금해서 매번 결말을 읽고 또 읽어. 그런데 그게 열린 결말인 것 같기도 하고. 주인공의 결정이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기도 하고. 그 책을 보면서 내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주제도 결혼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

네가 커리어를 고려할 때도 결혼을 염두에 뒀잖아. 준비된 자세가 있었으니 빨리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꼭 준비했다기보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했더라면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도 남아 있지.


그런데 너는 중학교 때부터 회사에 다닐 때까지 늘 공부를 해왔잖아. 혹시 공부 중독 아니야?
(웃음) 그래도 전문직이 됐을 수도 있는데. 아직도 내가 근시안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장기적으로 보면 너처럼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두는 게 노후에 좋을 것 같아.

난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해. 내가 근시안적이라서 결혼할 시기였어도 결혼할 자세가 안 되어 있다고 느꼈거든. 지금은 그냥 눈앞에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으니까, 장기적으로는 노후 준비를 못 하게 되지 않을까 늘 걱정돼.
음, 커리어가 노후에 중요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 나한테 어렸을 적 부모님의 기대가 늘 큰 부담이자 스트레스였어. 그래서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해. 평생 곁에 붙들어두기보다, 성인이 되면 독립적인 삶을 존중해주고 싶어. 그렇게 되면 나는 오십 즈음이 되겠지. 결국 나도 나만의 삶을 즐길 준비가 필요할 거야. 그런데 육아를 하다 보면 부서에서 한직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고, 애매한 경력으로 간신히 육십까지 일하다가 퇴직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백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과연 어떻게 내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언젠가 자식이 다 떠나고 내가 경제적 능력까지 잃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그 생각이 자꾸 따라다녀. 그래서 커리어를 쌓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게 지금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

회사에 돌아가서 예전의 너가 자격증을 땄던 것처럼 또 곧잘 적응하고 커리어를 쌓아나갈 것 같아. 거기 은행장이 되면 어떨까? (웃음)
글쎄… 은행장은 좀… (웃음) 내가 원하는 건 뭐랄까. 너와 너의 동생같은 삶을 살고 싶어. 능력이 있는 커리어 우먼. 내가 그려온 그림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그렇다고 다 채워진 것 같지는 않아. 여전히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는 거야.

인생은 고민의 연속인 것 같아. 모순에 나온 내용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더 부러워하고 갖추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미래 지향적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게, 그럼에도 나는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선택을 내렸던 거겠지? 내가 한 번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읽게 됐어. 그게 두 갈래길에서 선택을 내리는 내용이야.

헉, 나도 그 시 좋아해.
그 시를 읽고 한 번은 시어머님께 여쭤봤어. 어머님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후회한 적이 없냐고. 어르신의 식견이 궁금했었어. 어머님의 대답은, 후회를 할 땐 있지만 사람은 사실 후회를 해도 돌아가서도 똑같은 선택을 한다는 거야. 옷을 살 때도 그렇대. 이번에는 다른 걸 사야지 하면서도 결국 비슷한 색, 비슷한 디자인을 또 고르고, 사놓고 후회한다는 거야.

맞아, 옷장에 똑같은 옷만 있어.
맞아,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과거로 돌아가면 다른 삶을 선택할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고 하시더라. 예컨대 주변에 보면 이혼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찾지만 결국 전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고.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어. ‘어차피 같은 선택을 할 테니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

나도 같은 생각으로 살아. 왜냐면 우리가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가잖아. 그때 내게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결정한 최선의 선택이니까. 어떤 일이든 돌아가도 똑같겠거니 싶어.
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맞아, 나도 그래. 그래서 지금 걱정되고 더 하고 싶은 것들도 있지만 지금 내가 그려온 이 삶에 만족하려고 해.


직장인으로서,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살아가며 희엄마는 여러 자아를 동시에 품게 되었다. 때로는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리가 내린 선택은 그 순간만큼은 최선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흔들리는 현재 속에서도, 그 순간의 진심 어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렇게 단단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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