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엄마에게 아기란 (3)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희엄마에겐 꼭 닮은 아기가 있다. 웃을 때면 장난기 가득한 표정까지 똑같아,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하다. 한때는 누구보다 아이 같던 희엄마가 이제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매일 새로운 책임과 낯선 배움을 마주하는 육아, 희엄마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아기 너무 귀엽다. 웃는 모습이 너랑 똑같아.
아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줌 영상통화를 해본 거야.

다리도 정말 길다. 너도 키가 크잖아.
6개월 건강검진에서 키가 상위 3%가 나왔어.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72cm야. 농구계에 진출해야 할지도 몰라.

넌 정말 인류에 큰일을 한 것 같아. 이렇게 큼직하고 건강한 아기가 자라서 깜찍하고 발랄하게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치면 얼마나 세상이 밝아질까? 표정만 봐도 너처럼 장난꾸러기로 클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아기가 그렇게 재기발랄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처럼 돌아이 같은 모습은 안 닮았으면 해. 진지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 그래서 이름도 일부러 좀 더 어른스럽고 진중한 걸로 골랐거든. 법전 같은 이름으로. 주변 사람들이 이름이 딱딱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단단한 이미지를 원했어. 연약한 느낌 말고, 강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너는 이미 강인해. 아이를 이렇게 굳건하게 키워나가고 있잖아.
사실 나는 아직 그렇게 어른스럽지 않아. 너가 썼던 글을 읽으면서 내용이 웃기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를 성숙한 엄마라고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어. 두 번째 문단에 돌아이 같다는 말이 나왔잖아.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람인 것 같아.

너가 아이를 양육하는 일상이 어른스러운걸? 양육 스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그런 게 늘긴 했지. 근데 너무 힘들기도 해. 특히 신체적인 부분에서. 아기를 매일 목욕시켜야 하잖아. 진짜 간단하게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행동들, 씻고 먹고 자는 모든 걸 다 내가 해줘야 되니까. 나도 씻으면서 아기도 씻기는데, 아기는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으니까 목도 받쳐줘야 하고, 파닥파닥 움직이니까 그것도 잡아줘야 하고, 물 온도도 맞춰야 해. 그런데 내 손은 두 개뿐이야. 그러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밥 먹일 때도 마찬가지야. 처음엔 모유 수유를 했는데 자세 잡는 것도 어렵고, 몇 분 간격으로 먹여야 하는지도 알기 힘들었어. 나중에 분유로 바꿨는데, 아기마다 맞는 분유가 다 다르더라고. 성분도 다르고. 그래서 뭐가 좋은지 찾아봐야 했어. 하나하나가 모두 과제처럼 다가왔어. 또 허드렛일도 많아졌지. 아기 옷은 삶아야 할 것도 많고, 젖병도 매일 소독해야 해. 귀찮아서 넘기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기 거니까 매일매일 하게 돼. 그래서 이 삶이 가끔은 많이 힘들어.

그게 바로 성숙함의 정의 같아.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렵거든. 그래서 집을 어지러 놓기도 하고 빨래를 건너뛰기도 하고, 밥도 대충 먹을 때가 많아. 그런데 아기한테는 그럴 수 없잖아. 너는 그걸 책임감으로 다 하고 있으니까.
사실 그렇긴 해. 나도 원래 스스로 집을 열심히 치우거나 밥을 챙겨 먹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매일매일 하고 있더라. 벌써 190일째야.

요즘 일상에서 언제 안정감과 즐거움을 느껴?
아기랑 있을 때 완전히 즐거움을 느껴.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나를 보면서 웃어주거든.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해. 그래서 그 웃음을 보려고 아무리 졸려도 일찍 일어나.
아직은 내가 해줘야 할 게 많다는 책임감이 크지. 어린이집도 어떤 곳이 좋은지 찾아보느라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어. 그래도 아침마다 웃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냥 다 잊혀지고 즐거워. 아기라는 존재 자체가 나한텐 기쁨이야.
아기는 아직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안아서 거실에 두면 거실에 가만히 있고, 욕실에 두면 욕실에 가만히 있고, 내가 먹으라고 하면 먹고. 나의 행동에 따라 아기의 모습이 결정되니까, 모든 것이 책임감으로 다가와. 그런데 그게 또 너무 귀여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해주잖아. 그게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워.
내가 장난친다고 새 기저귀를 머리에 씌운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좋다고 파닥거리면서 웃더라. 내 발가락만 보고도 좋아하고, 내가 밖에 데리고 나가면 나가는 대로 즐거워하고. 이런 모든 순간이 다 귀여워.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 일이야?
내가 임신했을 때 읽었던 글 중에 엄마가 되는 건 “두 개의 심장을 품는 일”이라는 문장이 있었어. 그 말이 너무 와닿았어. 실제로 내 뱃속에서 또 다른 심장이 뛰고 있었고, 검진을 갈 때마다 아기의 심장 초음파 소리를 들려주는데, 내 심장이 아닌 아기의 심장이 들리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한 명 더 오롯이 키워내야 하잖아.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거야. 씻는 것도 내 얼굴 씻고 아기 씻기고, 밥도 내 밥 챙기고 아기 밥 챙기고, 옷도 내 옷 챙기고 아기 옷 챙기고. 이인분의 삶, 혹은 그 이상의 삶이야. 내가 모르는 것까지 새로 알아야 하니까. 한 번은 내 이를 닦다가 ‘아기 잇몸도 닦아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인터넷에 찾아봤어. 이가 없어도 잇몸을 닦아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거야. 나는 나름대로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놓친 것 같아서 아기한테 미안했어.

너한테 아기는 어떤 존재야?
뭐라고 답해야 할지 조심스러워. 다만 분명한 건 항상 행복하길 바라는 존재라는 거야. 정말 조건 없이 다 해주고 싶어.

아기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어?
똑부러지면서도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 아기를 낳고 나서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좋은 곳이었으면 해서.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너무 걱정돼. 그런 사회적 문제들을 생각하다 보면, 한국에서 사는 게 맞는지, 다른 선택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돼.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지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질 수도 있잖아. 그래서 아기의 미래를 더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하게 돼.

요즘 좋아하는 노래는 뭐야?
아기를 낳고 나서 좋아하게 된 노래가 있어. 윤종신의 오 마이 베이비. 아마 윤종신도 아기를 낳고 만든 노래일 거야. “우연일지 모르는 파파에 날 부르는 거라고 우기는 가슴.” 아기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소리일 뿐인데, 아빠는 그게 자기를 부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도 그래. 아기가 우연히 웃은 건데, 나만 보고 웃는 것 같고, 나만 불러주는 것 같아. 그런 순간이 너무 소중해. 가사 뒤쪽에는 “듣고 싶은 너의 생각, 너의 세상”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도 늘 아기의 세상과 아기의 생각이 궁금해. 그래서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 잔잔한데, 마음을 울려.
사실 어제 아기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는데, 거기에 엄마들이 엄청 많더라. 근데 나는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어. 괜히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려면 아직 멀었나’ 싶었어. 다른 엄마들은 이미 친해져 있었고,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거든. 그래서 쉽게 끼지 못했어. 나는 그냥 소심하게 핸드폰 만지면서 아기랑 놀았지. 하지만 나중에 아기의 세상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껴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아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

진짜 대단하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거네. 회사 신입사원으로 다시 들어간 기분일 것 같아.
맞아. 그리고 나는 외적으로 어려 보일 때가 있어서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나이 들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그래도 너 키도 크고, 스타일도 성숙해 보이잖아.
아니야. 그날 반팔티에 추리닝 입고 머리 질끈 묶고 갔거든.

아, 송도에서 대형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처럼 갔네. (웃음) ‘폭싹 속았수다’ 봤어? 애순이도 처음엔 양배추도 못 팔다가 나중엔 걸걸하게 변하잖아. 우리도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점점 기가 세지면서.
아, 그러게. 지금의 소심했던 희ㅇ(아기 이름)맘이, 나중엔 적극적으로 변하겠지?

엄마가 된다는 건 단순히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을 두 배로 살아내야 하는 책임이자, 동시에 조건 없는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는 여전히 소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루하루 아기가 주는 웃음과 기쁨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성숙이란, 거창하게 한순간에 나타나는 변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아기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책임을 다하려는 반복 속에서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반복의 끝에, 지금의 희엄마는 새로운 자아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희엄마에게 선택이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