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아웃 - 인터뷰 전에 내가 바라본 친구
이피디와 나는 ‘크리에이터클럽’이라는 직장인 사교 모임에서 만났다. 우리가 속한 그룹은 ‘낯선 생각’이라는 토론 모임이었다. 자아성찰적인 글을 쓰는 다른 그룹의 감성력을 얕보며(?), 이성적 사고력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판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모임이었다. 매주 주말이면 크리에이터클럽의 공용 공간에 모여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우리 모임은 정말 끈끈했다. 오후 네 시에 정식 모임을 시작했고 두 시간 동안 열띠게 토론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말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뒷풀이까지 가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시작된 뒷풀이는 새벽 네 시까지 이어지곤 했다. 주제는 사회 문제에서부터 좋아하는 책과 영화, 연애에 대한 가치관까지 다양했다. 돌이켜보면, 연고도 직업군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참 특별한 시간이었다.
대화의 화두를 던지는 건 늘 이피디였다. 그는 자주 가상의 두 가지 극단적 상황을 창의적으로 설정하고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 물었다. 그것이 대화의 시작이 되어 이야기는 늘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이피디는 대화의 주인공으로 나서서 의견을 말하기 보단 사회자의 역할을 즐겼던 것 같다. 주제를 던지고 뒷편에서 들어주었다. 중간중간 꼬리 질문도 하면서. 그리고 그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해서 관련 레퍼런스도 능숙하게 인용했다.
세월이 흐르며 모임은 줄었지만, 이피디는 여전히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해외에 나가거나 돌아올 때마다 먼저 연락해 밥을 먹자고 했고, 지난 만남에서 나눴던 대화들을 놀라울 만큼 정확히 기억해내곤 했다. 볼리비아에 오기 전에 그가 선물해준 영화 코코 엽서가 특히나 감동적이었다. 나는 언제나 챙김받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이피디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영상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흔치 않은 직업인데, 왜 이피디는 그 업계로 진출했을까? 또 그는 유튜브를 한다.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한 걸까? 여행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떤 기준으로 다니는 걸까? 또한 그는 자주 책과 영화를 언급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 이야기해주었는데 내가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만큼 내 기억력은 미천하다.
무엇보다 그는 성숙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기억할 줄 알고, 그들과 관계를 진하고 길게 이어나간다. 나에게는 없는 힘이라 더 궁금하다. 늘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이피디이기에, 이번에는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