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이피디의 일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잔잔하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그렇게 쌓인 그만의 생각이 브이로그 속 친구들과의 대화에 담기는 것 같다. 그 잔잔함 속에 있는 뚜렷한 축은 무엇일까? 그에게 가치관을 물었다.
혹시 인생의 가치관이 있어?
이거 내가 고민해봤거든. 나는 그저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 딱 그거인 것 같아.
어떤 게 부끄럽지 않은 거야? 기준이 있어?
내가 어떤 방향을 선택해. 그게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는 최선이라 생각해서 선택을 하잖아. 그럼 결국에 그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면서 사는 거지. 내가 차선을 선택했을지언정, 내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최대한 만들어나가는 것. 그게 나는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괜찮은 삶이었다’라고 생각할 것 같아. 그런 것도 근육이 필요한 것 같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괜찮은 선택이 되도록 만드는 근육을 키워나가야 하는 거지. 그게 계속 선순환을 만드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경험이 최근에 있었어?
응, 직무를 바꾼 것. 그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왜냐하면 원래는 PD를 하고 싶었거든. 처음엔 상황적인 요인으로 모션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던 거야. 그때부터 ‘여기서 나가면 진짜 PD 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왔어. 그러던 중에 권고 사직을 당해서 이직을 하는 기회가 생긴 거야. 그때 만약에 또 모션그래픽을 선택했으면 취업은 더 잘 됐을 거야, 여태까지 쌓아온 경력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경력을 버리고 이걸 선택한 거거든. 한 번 선택을 해보니까 지금은 이게 더 잘 맞는다고 느끼긴 해. 지금 돌아가도 모션 그래픽이 아니라 PD일을 결정할 거야.
아, 진짜 너무 잘됐다. 사람이 새로운 경험을 하면 자기 세상이 넓어진다고 하잖아. 그렇게 됐나봐?
응. 다만 내가 느낀 점이 있어, 직무를 바꾸면 다른 일의 경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그 전보다 두 배의 시간이 드는 것 같아. 이전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올해에 면접을 봤거든. 이전 경력이 5년 있는데도 지금 회사에서 보낸 경력 1년 반만 인정을 해주더라고. 같은 영상 일인데도 말이지. 그럴 때마다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어. 나도 사람이니까. ‘아, 그냥 모션 그래픽 일을 쭉 했었으면… 연봉도 훨씬 높았을 텐데’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서 모션 그래픽 일을 평생 할 수 있냐고 내 자신에게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
맞아. 그래서 목표가 중요한 것 같아. 목표가 확실하면 지금 잠깐의 상황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10년 뒤에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이건 어떻게 보면 내 가치관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나는 10년 뒤에도 관성에 눌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점점 그런 걸 많이 느끼거든. 주변 환경은 잘 변하지 않고, 사람은 점점 굳어가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늘 듣던 음악만 듣는다든지, 좋아하는 것만 계속 좋아한다든지,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든지.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주변 환경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로 인해서 유행에 사람들이 휩쓸려가잖아. 휘둘리지 않고 버티기가 점점 어려운 환경인 것 같아.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대.
응, 맞아. 나도 딱 그거인 것 같아. 계속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1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얼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럼 돈이나 조건 같은 구체적인 기준은 잘 모르겠어, 오히려 그런 기준들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하면서 사는 편이야. 그러니까 늘 스스로에게 묻게 돼. ‘이게 정말 주변 환경과는 상관없이 나만을 위해서 내린 선택일까?’ 하고.
또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해.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선입견 같은 것들이 있잖아. 사실 그런 게 맞을 때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 결국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점점 좁아지고, 그러다 보면 내가 나를 스스로 가두는 결과가 될 수도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개방적이고 호기심이 많구나.
뭐 그런가 봐. 성향 자체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 네가 글에다가 썼었잖아. 예전에 했던 대화도 잘 기억해서 물어보준다고. 내가 기억력이 진짜 좋은 것 같긴 해. 그쪽으로 뭔가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아.
그니까, 그게 특화되어 있어.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고 기억하는 것 같아. 내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진짜 닮았어.
맞아. 내가 봐도 그래. 나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내가 다른 친구한테 말했던 내용을 기억하잖아. 그런데 걔는 기억 못할 거라는 걸 내가 알아. 그래서 나는 처음 말하는 것처럼 말하든지, 아니면 그냥 흐름상 ‘그때 얘기하긴 했었는데’라고 가볍게 짚고 가든지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편이야.
아, 진짜 그런 순간이 있구나. 너무 배려심이 넘친다. 서운하진 않아?
뭐… 근데 그게 엄청 중요한 얘기가 아니라, 일상적인 얘기를 했던 거였으니까. 걔가 그걸 굳이 사사건건 기억할 필요는 없으니까 서운하지 않지.
대단한걸. 그 장면 생각났어.〈모태솔로지만 결혼은 하고 싶어〉에서 지수가 상대가 자기 말을 기억 못해서 엄청 째려보거든. 나는 사실 그 감정이 잘 이해가 안됐어. ‘저렇게까지 째려봐야 되나? 자기 얘긴데 상대가 꼭 기억해줘야 되나?’ 그런 생각은 들었어.
아니, 걔네는 서로 관심이 있는 사이였잖아. 다르지. 나한테 호감이 있다는 사람이 내가 한 말을 기억 못하면… 거기다가 걔는 중요한 얘기를 한 거였잖아. 자기의 어떤 감정기복에 대해서, ‘내 성격이 사실 이래’ 이런 걸 말한 거였는데. 그나저나 그 남자 이름 뭐였냐? 여튼 걔는 서운했던 거지, 뭐.
그렇구나. 그 남자애 이름은 승리야! 나의 최애였어. 혹시 거기서 어떤 사람이 제일 좋았어?
거기서 꼭 골라야 하니?
아하, 그런 거군. 그러면 어떤 사람을 좋아해?
나는 섬세한 구석이 느껴지면 좋은 것 같아. 사람이 말을 할 때나 행동할 때 포인트가 있잖아. 행동이 세심하거나 말을 예쁘게 한다거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연애 얘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어떤 연애관을 가지고 있어?
나는 연애를 많이 한 편도 아니고, 한 지도 꽤 오래돼서 아마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지만 깊어지진 않았고. 기본적으로 나는 불타는 연애보다는 편안한 관계를 더 선호하는 편이야. 친구처럼 티키타카가 잘 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관계. 그러니까 말하자면 ‘따로 또 같이’라는 느낌이 좋다고 해야 할까. 연인이라고 해서 모든 걸 함께해야 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삶은 각자의 삶으로 존중하면서도 같이하는 순간은 즐겁고 소중한 그런 관계 말이야. 만약 결혼을 한다 해도 그런 결혼을 원하고.
사람들이 흔히 그런 얘기하잖아. 연애할 때는 혼자 여행 가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많고, 결혼하면 더더욱 안 된다고. 근데 나는 오히려 '그게 왜 안 돼?'라는 생각이 드는 쪽이야. 결국 결혼은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는 차이일 뿐인데, 그 종이 한 장 때문에 연인일 때는 가능했던 게 부부가 되면 불가능해진다는 건 잘 이해가 안 돼. 나는 혼자 여행을 가는 게 왜 좋은지 알아. 앞으로 평생 같이 살 사람이 생긴다 해도, 인생이 이렇게 긴데 잠깐씩 혼자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나는 ‘따로 또 같이’가 존중되는 연애, 혹은 결혼을 꿈꾸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여행을 좋아하지? 소셜미디어에 여행 사진이나 영상이 엄청 많아.
응, 좋아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외여행을 엄청 자주 다니는 사람들 있잖아.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딱 세 번밖에 못 가봤어.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있다면, 해외여행의 재미를 조금 늦게 알게 됐다는 거야. 워킹홀리데이 같은 것도 못 해봤고, 그런 경험들을 놓친 게 정말 많이 아쉽더라.
여행의 어떤 부분이 좋아?
나는 해방감을 좋아하는 것 같아. 혼자 잘 다니는 편이라 여행도 혼자 가곤 하는데, 사실 혼자 간다고 해서 무슨 큰 성찰을 하는 건 아니거든. 그냥 ‘나’로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지. 회사에 있으면 직원이고, 집에선 부모님의 자식이고, 친구들 앞에선 또 친구로서의 내가 있잖아. 늘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다 보니 그 역할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 잘 없어. 그런데 혼자 하는 여행만큼은 그런 모든 걸 벗고, 오롯이 나로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
최근에는 제주도에 다녀왔어. 오랜만의 여행이라 너무 좋았지. 거의 1년 반 만에 혼자 하는 여행이었는데, 그때 확실히 느꼈어. ‘아, 내가 지금 쉬고 있구나.’ 집에서 쉬는 것도 분명 쉼이긴 하지만, 익숙한 공간 안에서는 온전히 내려놓기가 쉽지 않잖아. 늘 휴대폰 보고, 유튜브 보고… 뭔가를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데, 여행지에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 그제야 진짜 쉬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 뭔가를 본다는 건 결국 끊임없이 인풋을 쌓는 거니까. 컴퓨터 앞에서 일만 하는 것도 지겹잖아.
물론 어떤 사람들은 1년, 6개월씩 오래 여행을 다니기도 하잖아. 그게 결국엔 질릴 수도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얼마나 질리는 건지 직접 해보고 싶어. 질릴 때까지.
아 진짜, 그럼 이제 앞으로 계속 나가야겠네. 세계여행 한 번 해.
어, 나가고 싶다. 세계여행 좋지.
어느 나라 가보고 싶어?
나는 지금 당장 간다면 튀르키예가 끌리더라.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행지는 그냥 어떤 풍경이나 장면에 꽂히는 게 있잖아. 나만 그런가?
언니가 시각적인 감각에 좀 민감한가봐. 나는 사실 미적인 부분에 둔감해서, 여행할 때에 사진도 잘 안 찍거든. 오히려 역사나 문화 공부하는 게 좋아. 남미 꼭 와봐. 대자연의 장관이 정말 멋진데, 이렇게 시각적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와야 진짜 값어치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아, 나도 남미 꼭 가보고 싶다. 최소한 2주는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멀어서 고민이야. 그래도 가면 참 좋겠다 싶어. 세상엔 가볼 곳이 정말 많네.
나는 몇 번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이피디였다. 그는 워낙 괜찮은 사람이라 괜히 주변에 소개해주고 싶어진다. 정말 성숙한 연애를 할 것 같다. 분명 그는 ‘따로 또 같이’의 방식으로 존중이 담긴 단단한 삶을 꾸려갈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이피디에게 관심이 생긴 남성 분이 있다면 말해달라.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