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토론학회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초창기 참여했던 CEDA라는 형식의 토론에서 논의 주제는 "군사적 인도주의적 개입해야 한다"였다. 이론상 보았을 때는 찬성편이 더 쉬워서, 반대편에 섰을 때에 애를 먹었다. 현재는 sbs 기자가 된 당시 고학번 선배가 우리팀을 붙들고 국가 간 다자주의 모델을 알려줘서 애써서 반대편 입장에 이입하려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외교계에서 일하는 지금은 반대편에서 이야기하기 훨씬 쉽다. 군사적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니... 미국이 팔레스타인 쳐들어가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론상 보았을 때 더욱 이입했던 입장이 현실적 경험을 통해 바뀌는 경우들이 있다. 내게는 "공무원 정치적 중립 지켜야 한다"란 주제가 그러하다.


중립을 비겁하다 생각하며, 가두 시위에 나가던 대학생 시절, 나는 시민으로서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쓰던 글들, 토론 방송에 나가서 정치인들에게 하던 질문들,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들이 모두, 인간이 정치적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으면 사회가 후퇴한다는 이념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때 좋아하던 정치철학가가 한나 아렌트였고, 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이나 '인간의 조건'에 담긴 내용도 그러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정치적 중립 지켜야 한다"에도 언제나 반대 입장에 이입했다. 공무원이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어야 '어공(어쩌다 공무원/선출직 공무원)'들의 비상식적 정책을 환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기재부 공무원 신재민을 바보라고 할 때도, 그의 용기를 높게 샀다.)

그런데 볼리비아에 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볼리비아의 공무원, 심지어 공기업 직원들은 정치적 색을 띤다. 어공들에 반기를 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공들의 코드식 인사들로 채워진다. 장관급과 차관급뿐만이 아니라 말단 인사까지 전부다.


그래, 왜 공무원이 정치적 색을 띠면 정권에 반기를 들 자유가 생긴다 생각한 걸까? 오히려 정치적 색을 띨 수 있게 되면, 정권에 더욱 충성하게 된다. 정치적 역학이 그렇다.


그래서 볼리비아에선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때 장관급부터 말단까지 모두, 전부다 교체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 정책의 연속성이 없다. 심지어 말단 직원까지 숙청이 이뤄진다. 자신이 서명한 서류나 정책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위법성이 다음 정부에서 다뤄지며, 20대든 30대든 재판장에 선다. (공기업에 다니는 37살인 내 친구도 지금 주변 사람들이 잘리고, 재판장에 서고,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까 불안해 하고 있다.)


물론 내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올해 금융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내 kpi로 부여받았다. 이곳 금융감독원과 열심히 커넥션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결국 만들어서 다음주에 기재부, 중앙은행, 금감원, 보험당국과 정책 논의를 한다. 차관이 정책 서류에 서명할 수도 있는 큰 모멘텀이다. 하지만... 2주 뒤면 선거다. 오히려 이 논의가 다음 정부에는 부정적으로 비칠 영향도 있다. 그래서 포지셔닝을 잘 해야 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늘공(늘 공무원/행정직)'만 그 자리에 있어도 정책을 스리슬쩍 계속 추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색을 내비치지 않기에 어떤 정권이든 업무를 이어나가는 한국 공무원의 안정성을 이제는 높게 산다. 공무원은 철밥통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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