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구자에게 불평등이란 (1)

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김연구자는 어린 시절을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에서 보냈다. 물리적으로도 끊임없이 이동했고, 그 이동만큼이나 집안 사정도 요동쳤다. 소박하면서도 교육열이 있는 집안에서 자랐고, 유학을 했지만 가난이 공존하는 유년기를 지났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 빚과 생계의 고난을 몸소 체험했다. 그의 삶으로 체험한 경험이 어떻게 ‘불평등’이라는 감각을 몸으로 새겨 넣었는지 인터뷰로 담아보았다.


언니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어?

초등학교 전까지는 경남 사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조부모님과 살았어. 할아버지는 중학교 교사, 할머니는 작은 슈퍼를 운영하셨지.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부산에서 외조부모님, 부모님, 작은삼촌과 함께 살았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중국에서 보냈어. 할아버지가 "중국은 언젠가 다시 대국이 될 테니, 중국어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유학을 결정하셨지. 집안이 엄청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이 컸고, 온 가족이 나를 뒷바라지해주셨어. 친척이 아무도 없는데도 무작정 온가족이 중국에 간 거야. 처음 2년은 조선족이 많은 연변에서 살았어. 중국어를 좀 익히고 나서는 베이징으로 옮겼어.


지금의 언니를 만든 청소년기의 기억이 있어?

중국에서 지내며 한국 뉴스와 시사 토론 프로그램을 많이 봤어. 그때 볼 수 있는 한국 채널이 KBS1과 KBS World뿐이었거든.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항상 9시 뉴스를 봤고 토론 방송을 보는 것도 자연스러웠어. KBS 다큐 <현장 르포 동행>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거의 매주 챙겨봤어. 그걸 보면서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구나. 언젠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

또 삼촌이 사준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을 읽었어. 이철환 작가는 산동네에서 공부방을 하면서 선생님을 했던 사람이야. 그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어. 부산의 산동네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어. 그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고, 그런 식으로 어렸을 적부터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


개인적인 경험도 있었다고 알고 있어.

응,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근무하던 금융회사에서 횡령 사건으로 복역하셨어. 집에는 빨간 딱지가 붙었고 큰 빚이 생겼지. 매일 같이 이자가 생겼어. 어머니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었어.

그때 경제적 어려움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꼈던 것 같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행정고시를 준비했어. 그때 대학 졸업장의 의미가 사라졌던 시기였어. 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 집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이전부터 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행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는 어머니와 함께 원룸촌에 살던 때도 있었어. 생계를 이어가고자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어. 도미노피자, 과외, 신문배달, 마트 캐셔...신문 배달할 때 어머니가 차로 뒤에서 라이트를 비춰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마트에서 캐셔를 할 때는 손님이 "아줌마, 된장찌개는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물었던 기억도 나. 나는 그때 고작 스물 한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만큼 모습이 말이 아니었던 거지.


무엇을 느꼈어?

돈 벌기가 진짜 어렵구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구나를 느꼈어. 복학했을 때 친구들은 3학년이었지만 나는 다시 1학년이었어. 일본에서도 계속 과외를 하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했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오후 다섯시부터 새벽 다섯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어. 한 번은 내가 일하는 식당에 아는 사람들이 온 거야. 순간 부끄러웠는데,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뭐가 부끄러워?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 것뿐이야."

나는 그때 세상을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라졌어. 나의 치열했던 삶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과 '삶의 안전망'에 대한 감각이 생겼어. 그러고 학문에 더욱 정진하고자 싱가포르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어. 싱가포르국립대의 학비가 비쌌는데 우리 학교 학비와 같은 가격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거든. 똑똑한 친구들을 보면서 지적 자극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나.

이때의 경험들은 이후 내 학문적, 직업적 방향을 결정하는 기반이 되었어. 나는 불평등을 논문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소 먼저 겪은 사람이야.


후술하겠지만, 그가 회상한 유년의 파노라마 ― 중국 유학의 기억, 그가 읽고 보았던 책과 방송들, 아버지의 복역과 가족의 빚, 아르바이트로 버텨낸 젊은 날 ― 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그 시간들은 그에게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을 길러주었고, 이후 그의 직업과 연구, 그리고 평생의 문제의식을 결정짓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에게 불평등은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체화된 삶의 경험이자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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