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 인터뷰에서 친구가 바라본 자신
김연구자가 불평등을 자신의 일로 체감한 이후, 그는 그것을 삶의 자세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언론, 스타트업, 프로젝트, 공기업, 시민단체, 유학,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활동의 중심에 끌고 갔다. 그의 경험이 삶의 소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담아봤다.
어렸을 적의 경험들을 어떻게 승화시켰어?
그때 당시에 내가 한국의 구조적인 사회문제에 눈을 뜨게 된 책이 있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야. 어떤 사람들은 장발장처럼 너무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만약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훔치거나 돈을 갚지 못하면 엄청난 형벌을 받겠지? 그런데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달았어. 법도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걸 그때 알게 됐어. 한국 사회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지.
거기서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 진보적인 신문들도 재벌이 주요 광고주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 그때부터 독립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러다 뉴스타파를 알게 됐지. 그때가 한참 이명박 정권 시절이었고, 해고된 기자들이 모여 뉴스타파를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뉴스타파에서 연수생으로 활동했었잖아.
그 무렵 내가 한 학기를 휴학하고 인턴을 두 개 했어. 우선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세 달 정도 인턴을 하면서 대기업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이해해보고 싶었어. 그 이후 바로 뉴스타파에서 탐사 연수생으로 일했지.
이 시기에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라는 책을 알게 됐어. 조지 오웰은 작가이지만, 그 전에 기자였어. 세상에 알리고 싶은 사람들의 삶을 직접 살아보며 내면화했다고 해. 당사자가 될 수는 없지만, 그 환경 속에서 같이 어울리며 살아야 그들의 삶을 그나마 진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었어. 조지 오웰이 실제로 밑바닥 생활을 5년 동안 하고 나서 그 책을 썼다고 하더라고. 그때 '나의 경험이 직업 언론인에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처음 했어.
그때 친하게 지낸 선배의 영향 덕에 장애활동보조인 일에도 관심 가졌던 기억이 나네. 광화문역 근처에서 장애인권 단체 시위가 있었어.
장애등급제 폐지 이슈였을 거야. 나도 그때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장애인권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어. 우리가 비슷한 점이 있어서 신기하다.
맞아, 너도 관심이 있었구나. 그때 시위하시는 천막에 음료수를 사서 갔던 기억이 나. 그때 장애활동보조사 자격 수업을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됐어. '노들학교'라는 곳에서 수업을 들었지. 그 이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일본어 과외 선생님이 이런 걸 알려줬어. 한국의 시각장애인 선생님 40여 분이 일본으로 와서 일본 시각장애인 선생님들과 교류하는 행사가 있다고. 통역에 관심 있냐고 물으셔서 참여했어. 그때 일본에서 일주일 정도 함께했던 경험이 있어.
이후에도 불평등 관련 일들을 했지?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어?
응. 일본과 한국 IT회사에서 총 6년간 일했는데,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
2019년에 한국 최초 우주인이었던 고산 대표님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때 아버지의 부탁으로 내 명의로 법정 최고이자율로 여러 건의 대출을 받았어. 회사 일에 집중이 안 됐고, 결국 대표님께 말씀드렸지. 너무 감사하게도 대표님이 직접 은행에 가서 저금리 대출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 나에게는 은인이셔.
그때 깨달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일수록 자산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 높은 이자를 내면서 돈을 갚아야 한다는 걸. 나는 그때부터 '돈'이라는 게 너무 끔찍했어.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된 이후 시점이었는데, '타잇 앤드 유니버시티(TEU)'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어. 구글과 나사의 후원으로 설립된 미국의 '싱귤래리티 유니버시티'처럼, 첨단기술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프로그램이었지.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모여서 "당신은 무엇에 미쳐 있는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팀을 꾸려 근원적인 원인을 찾고 솔루션을 내는 거였어. 그때 나는 올인했어. 내가 제안했던 주제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였고, 좋은 팀을 만나서 깊이 있게 고민했어. 결국 1등을 했어.
그랬구나, 그때의 고민이 직업 생활 동안 계속 이어졌어?
그 이후에도 계속 내 문제의식에 대해 고민했어. '내가 가진 해결책은 뭘까?' 하면서 찾다가 커먼즈(Commons)라는 개념을 알게 됐어. 공동으로 만든 부를 함께 나누는 개념이야. 그걸 통해 사회적 경제를 알게 됐고, 홍기빈 소장님을 찾아가서 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의견을 여쭤봤어. 그때 알게 된 개념이 '삶의 안전망'이야. 근로소득 외에 커머닝을 통해 삶의 안정망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
그러다가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지원 공고를 발견했어. 당시 다니던 스타트업보다 월급이 훨씬 작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이직했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직하면서 돌봄에 대한 개념을 더 알게 됐어. 지역사회 사람들이 서로 돌보며 공동체 기반 돌봄을 통해 삶의 안정망을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 또 빈곤 문제를 고민하던 선생님들을 알게 되었고 그분들이 화폐민주주의와 관련된 시민단체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주셨어.
언니가 지금 가장 크게 천착하고 있는 문제잖아.
내가 영국 가기 1년 전쯤, 화폐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 그때 화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 알게 됐지. 중앙은행이 돈을 만들고, 상업은행이 대출을 통해 그 90%를 사실상 '허공에서 찍어낸다'는 걸 알았어.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은행에 권한을 넘긴 셈이야. 돈 많은 사람들은 더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고, 돈이 없는 사람은 더 높은 이자를 내야 하지. 그때부터 현대 금융 체계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단체들이 많더라. 영국에는 'Positive Money', 전 세계 30여 개국이 참여하는 'IMMR'이라는 우산 조직이 있어. 우리가 만든 시민단체의 초기 단계에 영어가 가능한 젊은 활동가가 나뿐이어서, 내가 가교 역할을 맡았어.
최근 했던 가장 보람찬 일은 『화폐 대전환: 은행화폐에서 CBDC로』이라는 책을 번역한 거야. 단체 사람들과 함께 번역했어.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베를린까지 찾아가 만나기도 했지. 거의 2년 걸려서 책이 나왔어.
또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은 '지역 공공은행'을 만드는 일이야. 지금 대부분의 은행이 상업은행이잖아. 그런데 지역 공공은행의 핵심은 은행의 소유주가 시민이라는 거야. 은행 수익이 시로 환수되는 구조. 그리고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화폐 민주주의 관점에서 어떻게 규제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
지금 금융 시스템이 '화폐의 전환점'에 있다고 생각해. 요즘은 '화폐의 커먼즈'에 관심이 많아. 화폐 발생 수익이나 사회환경적 피해 등을 어떻게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할지 고민하는 거야. 예컨대 환경을 훼손하는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고, R&D나 빅데이터 같은 공동으로 만들어낸 부의 일부를 퍼블릭 펀드로 모으는 거야. 그걸 배당금처럼 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언니가 그리는 이상향은 뭐야?
지금 내가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것은 기후 위기가 정말 생각보다 더 심각한 문제더라고. 개발도상국에서도 부채 문제가 진짜 심각해. 개발도상국들은 차관을 받아서 원금이랑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니까, 정작 지금 바로 대응해야 하는 기후 위기 문제나 기본적인 교육, 보건 같은 데에 돈을 제대로 못 쓰고 있는 상황인 나라들이 많아.
'금융 시스템의 민주화'라는 개념이 사실 되게 모호하잖아. 근데 지금 존재하는 이 금융 시스템은 돈 많은 국가와 사람의 돈을 더 불리기 쉽게 설계돼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체는 그 시스템을 극복하기가 정말 어려운 구조야. 그래서 나는 '화폐적 커먼즈' 같은 개념을 통해서 개인 차원에서도, 국가 차원에서도 조금 더 민주화된 금융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어.
그게 내 세대에 이뤄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이건 워낙 거대한 담론이고, 몇백 년 된 은행의 역사하고도 맞닿아 있는 문제라서. 그러니까 내 세대에 못 이뤄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지금의 노력으로 다음 세대에서라도 조금 더 나은 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갖고 있는 이상이야.
음 그렇구나. 언니처럼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으면 언젠가 물이 나오겠지. 언니가 김육이라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나에게 알려줬었잖아.
최태성이라는 EBS 역사 선생님 유튜브 강의를 봤어.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게 내게 확 와닿았어. 그 강의에서 김육 선생님을 소개해줬어. 김육은 내가 앞서 언급한 조지 오웰처럼 가난을 직접 경험했어. 백성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사는지 자기 몸을 거기 던져서 확인하고 '대동법을 시행하면 이 사람들 삶이 나아지겠구나'라는 걸 믿고 평생을 그 일에 바친 거지. 근데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에 충남 일부 지역에서만 겨우 시행됐고, 돌아가시고 나서 100년이 지나서야 전국적으로 시행됐어. 그런 기반을 만든 삶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책들이 이뤄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어. 하지만 평생을 걸고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다음 세대에선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당장 우리 세대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지식과 연구의 축적으로 다음 세대가 아젠다를 이어나가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시간이 몇 세대에 걸쳐야만 진행될 수 있는 큰 개혁들이 있잖아. 그 개혁이 내 세대에 진행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걸 김육의 삶을 생각하면서 깨닫게 됐어.
그리고 ‘밀정’이라는 영화도 내게 많은 영감을 줬어. 영화 끝부분에 공유가 송강호한테 과업을 맡기면서 “당신은 꼭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야지 앞서 죽은 동지들의 삶이 뜻깊다. 꼭 살아남아라.” 이렇게 말하거든. 그러고 송강호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그 엔딩도 너무 와닿았어.
결국에는 혼자 하지 못하더라도, 같이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이 있으면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할 수 있잖아. 내가 먼저 죽으면 다른 동지가 할 수 있고,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도 있고.
나한테도 울림을 준다. 내가 추구하는 일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겠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길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 그 전에는 나 혼자 일단 해봐야겠다라는 생각만 했어.
맞아. 이거 관련해서 내가 꼭 소개하고 싶은 개념이 있어.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에 나온 내용이야. 각자는 작은 나무 한 그루라는 거지. 근데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면서 작은 숲이 되고, 그 숲이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개념이야. 이 개념이 너무 아름답고 좋더라고. 결국에는 혼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동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 그런 동지들과 같이 가는 거지. 그 길을 꾸벅꾸벅.
그런 동지들을 어떻게 만나지?
인생의 단계별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예를 들면 너랑 나도 정말 친한 친구이자 동지이고.
남편도 언니 삶의 동지잖아. 어떻게 처음 만났어?
런던의 188번 버스에서 만났어. 우리 기숙사에서 학교 가는 버스. "너는 왜 영국에 왔니?" "왜 그 전공을 선택했어?" 이런 식으로 서로 인생 스토리를 물었어. 나는 타고난 성격이 워낙 진지하니까, 그런 얘기들을 했지. 그런 얘기하면서 '아,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느꼈어. 그러다가 사귀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지.
언니에게 남편은 어떤 사람이야?
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 딱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사람이야.
나랑 가치관이 비슷해. 나는 죽음에 대해서 항상 인지하고 있어. '우리는 이 인생을 한 번만 산다.'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 등 뒤에 해골 문신이 있어. 이전에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그 사고로 죽었어. 본인도 다리 큰 수술을 하고 6개월 동안 걷지도 못하고 재활치료를 했거든. 그런 경험 때문에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거야.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진실되게 살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야.
책임감이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아.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해내고, 진짜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빠야.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줘.
지금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컨설팅 일을 하면서도 본인의 꿈을 이루는 시민단체 활동도 병행해. 나는 화폐민주화 활동을 하잖아. 그건 되게 거대한 담론을 다루는 일이야. 실제로 눈앞에서 누군가의 삶이 바로 바뀌는 걸 보기 어려워. 근데 남편이 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이야. 그 활동을 통해 실제로 복지 정책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생기거든. 시간을 쪼개서 그런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어. 내가 리스펙하고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아.
남편도 의사였다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업종을 바꾼 거였잖아.
응. 의사로 일하면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대. 그래서 의료 정책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걸 공부하려고 영국 런던으로 간 거야. 나는 남편 덕분에 결혼하고 나서 많이 든든해졌어. 인생의 동반자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있으면 사막 한가운데 있어도, 바다 한가운데 떨어져도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은 그런 믿음을 주는 사람인 것 같아.
사회적인 비전에 대한 가치관도 공유하고. 지금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같이 고민하는 사람. 정말 소중하다. 원팀이네! 아기가 태어났는데, 아기한텐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아기한테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해라, 의미 있는 일을 해라" 이런 얘기는 안 하고 싶어.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되는 거니까. 그냥 건강하고, 자기가 언제 즐겁고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감사함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중에 가수가 되든, 페인터가 되든, 만화가가 되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의미는 본인이 찾아가면 되는 거니까. 그게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든지 간에.
너나 나나 내 남편이나 비슷한 면이 있잖아. 우리처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사실 좀 버거울 때가 있잖아. 왜냐하면 난 한낱 작은 인간일 뿐인데 세상의 문제들이 어디까지 해결될 수 있을지, 내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지.
아기는 이런 고민들에서는 조금 자유로웠으면 해. 세상을 너무 무겁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의미 있는 일은 자기가 스스로 찾아가면서 했으면 좋겠고.
어느덧 실천가이자 활동가였던 김연구자는 한 가정을 꾸려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 그가 걸어온 길목마다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 선배, 새로운 대안을 연구하는 학문의 대가들, 시민단체를 함께 만든 선생님들, 그리고 그의 남편까지. 나 또한 그의 동지가 되고 싶다. 우리는 함께 원하는 세상을 그려나갈 것이다. 또 김연구자의 아이가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