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으로부터 2>
-아토피 치료제 듀피젠트 주사-
듀필루맙(브랜드명 듀피젠트) 주사약 300밀리그램이 담긴 주사를 2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10월 2일부터 맞았으니 얼추 4개월이 지나간다. 이번에 10번째.(첫 번째 주사는 랜딩샷이라고 두 대를 맞아서 총 주사대수는 11번)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나는 주사 맞는 날의 상황도 꼼꼼히 기록해 놓았는데 그 11번 중 2번은 굉장히 아팠고 다섯 번은 중간즈음, 4번은 별로 아프지 않았다.
냉장보관약이라 꺼내어 바로 맞으면 많이 아픈 편이고, 주사를 놔주는 선생님에 따라 아픔의 강도가 다르다.
아무튼 이 얄궂은 병을 이 300밀리그램 약물이 거의 다 잠재워 놓았다.
과학의 놀라운 힘은 남자임에도 평생 면도기를 사보지 않은 내게 면도기 검색을 시작하게 해 주었다. 되게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는 수염 나는 피부부위가 너무 망가져서 거의 나지 않았거든. 그냥 작은 가위정도로 며칠에 한번 잘라주면 될 정도. 지금은 손끝에 걸릴 만큼의 수염이 나고 있다.
심지어 눈썹도 나고 있어!!!! 솜털 수준이지만.
(나 원래 눈썹 있었다. 그것도 짙게. 아토피 때문에 망가져서 다 빠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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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많이 힘든 일이 있었다.
아니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감내하라는 억울한 상황에 놓이다 보니 스트레스 지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왔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는 피부에 바로 나타난다.
이게 얼마나 무섭고 대단하면 이 놀라운 과학의 힘을 뚫고 올라온다는 것이다!!!
다행히 예전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지만 아무튼 이렇게 다시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자 나라는 인간의 상태에 대해, 이 끈질기고 지겨운 병에 대해 더욱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화내면 안 된다.
싸우면 안 되고 흥분해도 안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인간이 있나?
화나고 흥분하고 끝없이 감정이 요동치는 평범한 인간인 내가 말이다.
다만 몇십 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터득한 게 있다. 내가 못 버틸 정도의 스트레스가 올라오면 무조건 던진다. 버린다. 내가 불같은 마음을 던질 수 없으면 그 불덩이를 연료 삼아 끝없이 그림 그리고 글 쓴다. 불이 꺼질 때까지.
그러면 몸도 나아지고 그림이 남는다.
내가 터득한 방법은 그거다. 사람에게 풀지 않고, 나에게 터뜨리지 않고, 최대한 좋은 곳에 장작을 밀어 넣어 연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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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결과를 나는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할 뿐이다. 처음 이 주사를 맞기 시작할 때 부작용이 있을지, 효과는 있을지 몰랐지만 일단 시작했던 것처럼,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나에게 벌어진 억울한 일도 좋은 결과까지 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 주사는 그저 아토피만 잠재우는 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조용히 내려놓게 해 준다.
이제 밤에 잠을 잘 수 있다.
이제 찡그리면서 깨지 않고 옷이며 베개, 이불에 피가 묻어있지 않다.
빨갛게 부었던 눈이 가라앉았다.
우리를 괴롭히던 일도 곧 가라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