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하게 살고 싶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랜만에 인터뷰
얼마 전 모 매체 기자님으로부터 인터뷰 요청 메일이 왔다. 기자님이 오래전 내 작업을 좋아하셨고 (시간기록장까지 사용하셨어 ㅠ_ㅠ) 마침 아토피와 관련 치료제 취재도 꾸준히 하셨던 터라 내 작업과 치료내용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보통의 인터뷰 요청메일과는 너무 달라 이거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자님 만나 뵙고 거의 두 시간을 얘기했는데
나는 이 작은 이벤트만으로도 매우 큰 치유를 받았다. 기자님이 오래전 쓰셨던 시간기록장(내가 2004년부터 만들었던 다이어리 이름)까지 가지고 오셨는데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의료전문 미디어 기자시고 아토피와 기타 치료제에 관해 많이 알고 계셔서 이 부분에 대한 얘기도 굉장히 수월하고 좋았다. 사실 모든 병은 그 나름의 고통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만 아토피는 기타 다른 질환에 비해 가볍게 알고 있거나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는 경우가 아직도 꽤 있기 때문이다.
병의 경중을 따질 때 죽음의 거리를 재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병도 결코 그 거리가 멀지 않다. 병증으로 죽음에 이르기 전에(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음) 스스로 미래가 없음에 죽을 택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특히 어린 시절부터 쭉 이어진 경우 거의 미래를 포기하는 환자들이 꽤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고.
그나마 나에게는 골방에 틀어박혀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었고 글이라도 찍을 수 있었던 게 유일한 탈출구 중에 하나였는데 그마저 없는 친구들은 암흑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지금은 점점 새로운 치료들이 나오고 있어 아토피 중증 환자들에게 좀 더 나은 치료옵션이 생기는 중인데, 일단 너무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해서 알아보지 않거나 아예 모든 치료를 차단한 환자들도 많다.
내가 받고 있는 듀피젠트 치료만 해도 산정특례를 받지 못하면 너무 고가인 데다 접근성도 좋은 편이 아니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 다니는 대병 의사 선생님을 뭐라 하는 게 아니고 내 경우만 해도 듀피젠트에 대한 설명, 부작용, 정보, 의사 선생님에게 하나도 듣지 못했다. 물론 병력이 매우 긴 데다 미리 충분히 내용을 알고 대학병원 첫 진료부터 '듀피젠트 받길 원한다' 얘기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본인이 스스로 찾아보지 않으면 괜찮은 정보를 의료진으로부터 얻기가 힘들어 우왕좌왕하는 것도 부지기수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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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이 질문 주신 것 중에
아토피 신약치료받고 제일 크게 바뀐 게 뭐 내고 물으셨는데,
"오늘 이렇게 약속해서 기자님 만나는 거요"라고 대답하자 조금 놀라셨다. 아토피 중증을 오랫동안 앓은 사람들은 안다. 약속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심지어 컨디션 좋은 상태에서도 미래의 약속이 불안함으로 다가와 스트레스를 주니까. 한두 번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하고 취소할 수 있지만 그게 평생으로 쌓인다 하면 어떤 사람이 이해해 줄 수 있나? 게다가 공적인 일, 사회생활에서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 생계유지와도 관련 있기 때문에 더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보통사람처럼 잠을 자요."
"일어나서 보통의 사람처럼 나갈 수 있습니다."
"일어날 때 아프지 않습니다."
기자님이 질문에 내가 한 답이다.
그러니까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평생 아무렇지도 않게 해 오던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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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과는 아토피와 관련된 인터뷰만 한 게 아니고 내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늘 내 책과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실제로 온라인에서 보면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 스타일 이런 게 대부분 비슷하다.) 기자님이 쓰신 빽빽한 시간기록장 보며 다시 한번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다이어리 안에 빼곡히 기록하고 정리하니까.
나는 기록이 주는 힘이 굉장하다고 믿고 있고 대부분 그 기록으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사이 비어있는 부분은 사람들이 채워주는 데 오늘처럼 나의 작업을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날 때 힘이 나고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요즘 가장 큰 화두는
<무해하게 산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
무엇으로부터 인지 매일매일 기록한다.
며칠 전에는 오랜 작업의 기억을 불러준 기자님으로부터였다.
*첨부한 시간기록장안의 내용은 그냥 올려도 괜찮다는 기자님 허락하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