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온도
<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 >
오랑씨는 저희와 같이 사는 고양이입니다.
집고양이는 아니고 2018년 3월 8일 밤
양평의 대형 카페 앞에서 만났습니다.몇 살인지 몰라요.
이제 2023년이니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 보라요정 님과 저는
거의 매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하는 게 가장 큰 행복 중 하나였습니다.
오랑이를 만난 그날은 개인적으로 좀 안 좋은 일도 있고 해서
바람도 쐴 겸 멀리까지 나가기로 했습니다.
어디 갈까 하다가 예전에 자주 가던 포천의 국숫집이 떠올라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식사를 다하고 커피를 마시러 가야지 하고 고민하다가 둘 다 “테라로사!”를 외치고 가려는데…
생각해보니 집에서 국숫집까지 거의 50여 킬로..
포천의 국숫집에서 다시 양평까지 또 50여 킬로,
나중에 다시 집에 돌아가려면 거기서도 50여 킬로를 가야 하는 건데…
‘국수 먹으러 50킬로를? 거기서 커피 마시자고 또 50킬로를? 얘네들 미쳤나?’에서
‘미쳤나’를 맡고 있는 우리들이라 룰루랄라 저희가 좋아하는 양평의 테라로사 카페로 갔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 영업이 끝날 무렵 나왔는데 웬 노란 털뽀시래기가 애옹애옹거리며
다른 사람들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본 순간, 죽기 살기로 따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고양이가 바로 지금의 오랑씨입니다.
(이 이야기는 비운의 웹툰 <같이 살 수 있을까?> 에 전부 그렸지만 비운의 만화라 보지 못한 분들도 많으니 글로 다시 씁니다. -_-;;) 아무튼 그날 오랑씨는 정말로 우리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따라다녔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그러다 말겠지 하고 같이 있어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가지 않아 주변 가게분들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고양이 여기서 키우는 건가요?
아니라고, 며칠 전부터 나타났는데 마침 근처 가게에
고양이 밥을 주는 분이 계셔서 계속 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어쩌나 하다 결국 그냥 가겠지 하고 차에 올랐는데
이 녀석이 정말 차에 딱 붙어 울면서 가지 않는 거예요.
차를 움직이면 다칠까 봐 저는 내리고 보라요정 님이
“야, 너도 같이 갈 거야?”
라고 했더니 녀석이 열린 문 사이로 잽싸게 올라타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혹시 어디 아픈 데는 없나 병원이나 데려가 보자 하고
서울로 와서 24시간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다행히 녀석은 큰 문제가 없었고 병원에서는 심야 검사는 비싸니
날 밝고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보라요정 님과 저 둘 다 ‘고알못’이라 병원에서 알려주는 대로
급하게 고양이 화장실, 모래, 사료 등 당장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 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일단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 밤에 온 거라 무슨 케이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옷으로 둘둘 말아서 안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병원을 나서자마자 제 품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거예요.
저는
‘아 망했다! ㅜ_ㅜ 괜히 데리고 와서 더 위험해진 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야!!! 어디 가!!! 야 인마!!”
하고 외쳤더니 미친 듯이 달려가던 오랑씨가(당시 이름 없음) 거짓말처럼 딱 멈춰 섰어요.
치타처럼 튀어나가던 녀석이 멈춰 서서 날 빤히 쳐다보는데
그 순간이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조용히 걸어가서 다시 오랑씨를 안아 올렸습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늦은 밤
녀석을 가만히 들어 올려 품 안에 안으니 그 밤의 온도가 몇 도쯤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의 평생 아토피를 앓아왔고 그중 몇몇 해는 상태가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서
아예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들은 모두 피해야 하는 그런 몸입니다. 굉장한 후유증을 남긴 이 병은 게다가 아직 진행형이죠.
거의 모든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제가 반려동물과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나마 많이 좋아졌지만 늘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라니!!!!
걱정이 어마 무시하게 앞서는데,
이 작은 치즈 덩어리 같은 고양이는 정말로 세상 편하게,
처음 본 사람들의, 처음 와본 집이라고 믿기지 않게 잠을 자더라고요.
처음에는 고양이 키우는 지인도 많으니
입양을 원하는 분이 있으면 잘 보살펴주다 좋은 분에게 보내줘야지 했어요.
하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오랑씨와의 묘연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녀석은 정말 처음 만난 고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었고
마치 처음부터 우리 집에서 태어난 것처럼 우리 곁에 착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중성화도 안 되어 있고 예방접종도 필요할 것 같아서 이런 거라도 해주고 보내자 마음먹고
수술도 시켜주고 예방접종도 해주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오랑씨와의 시간이 쌓이면서
‘고양이 키우는 친구들에게, 혹은 입양을 원하는 분에게 보내줘야지’ 했던 마음은
‘아, 같이 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제게 큰 문제가 없었고(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귀여움을 매일 목격하게 되면서
‘고알못’ 두 인간은 ‘이 묘연은 잡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일어나는 과정은 꽤 복잡하지만 그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날 우리가 국수 한 그릇, 커피 한잔을 먹자고 100킬로를 가지 않았다면,
그 카페에서 혹시 더 빨리 나왔다면,
오랑이가 우리 차에 올라타지 않았다면,
병원에서 나온 직후 제 품에서 튀어나갔다가 제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서지 않았다면,
3월 8일의 그날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복잡한 우연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그리고 우연은, 아주 단순하게 마음 하나 먹는 것으로 필연이 됩니다.
“우리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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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오랑이를 만나기 전,
이틀 동안 저는 고양이랑 같이 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너무 생생해서
보라요정님에게도 말했는데
그다음 날 , 오랑이를 만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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