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괜찮아>
몇 해전의 일이었습니다.그 해 제가 냈던 책은
그동안 제가 냈던 책중에 가장 적게 팔렸습니다.
——
뭐랄까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판매량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애써준 편집자님에게도 출판사에도 다 미안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저는 그런 마음이 더 들어요.
저랑 어떤 일을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너무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저는 그게 일종의 불안이란 것도 압니다.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그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이제 이 일을 그만해야 하나?'
하긴 제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저와 비슷한 작업을 하던 작가님 중에 아직도 같은 작업을 하는 분은
이제 손을 꼽을 정도니까요.
그러다 꽤 큰 일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해의 실패를 다 덮을 만큼 큰 작업이었습니다.
얘기는 잘 흘러갔어요. 확정은 아니었지만요.
‘이 정도면 거의 할 것 같다.’
그런 단계까지 갔습니다. 네! 제가 그래도 이 생활 꽤 오래 하지 않았습니까. 촉이 있죠!
오프라인 미팅은 잘하지도 않는 제가 미팅 몇 번에 최종 오케이 하는 분까지 만났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 작업이 틀어졌습니다.
이유가 뭐고 그동안 뭘 해왔고는 다 상관없어요.
그동안 수없이 겪은 일이라 모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생각과 마음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번 책 일도 그렇고 모든 게 겹쳐서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바람도 쐴 겸 해서 매일 가던 단골 카페에 갔습니다.
보라요정 님과 카페에 가도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어서 멍했나 봐요.
커피를 다 마시고 밤 산책을 하다가
보라요정 님이 툭 한마디를 해줬어요.
“오빠, 망해도 괜찮아.”
“응?”
“망해도 괜찮다고.”
“진짜?”
“응.”
우리는 그날 연남동의 한 편의점에서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연희동 높은 곳 끝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고 오빠, 나 가게 차릴 때 오빠도 그랬어. 망해도 괜찮다고.”
집에 돌아온 저는 며칠 만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온갖 분석과 전략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원인과 이유를 찾고 지도를 그려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걸 접고 그냥 안아주면 될 때가 있습니다.
춥다고 그러면 그냥 안아주고 시끄럽다고 그러면 말을 안 하고
걷고 싶다 그러면 그냥 걸어주면 될 때가 있습니다
망해도 괜찮은 건… 세상에 없습니다.
망해도 괜찮은 사람은 세상에 없어요.
그냥 ‘망해도 괜찮다고 안아주는’ 사람이 있는 거죠.
우리는 그해 망하지 않았고, 다음 해, 오랑이를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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