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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리테일 Apr 05. 2023

아버지의 23년_1인분의 몫

23년만에 아버지 이장을 했습니다.



< 23년_1인분의 몫 >


아버지는 2000년에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 돌아가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장례 치르는 것도, 장지에 가는 것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형님들하고 남은 가족들이 내가 할 1인분의 몫을 떠안아 주었다.

그때 나에게는..그런 사정이 있었다.


어느집이나 그런 사정이 있다.

그런 캐릭터들이 있고

그런 사연이 있다.

할머니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그 아래 더 많은 사연들이 있어서)

어떤 선택의 여지없이 아버지는 선산으로 가셨다.


23년이 지나

어제 이장을 했다.

비가 온다 했는데 다행스럽게 오전내내 맑아

개장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았다.

화장하러 가는 길에 본 벚꽃은

어느해 본것보다 더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

화장을 하고

시간이 맞지않아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

형님이 아주 좋은 곳을 찾아

아버지는 23년만에 이사를 가셨다.

비가 오는 날인데도

맑은날보다 더 날이 좋은 것 같았다.

어머니도, 큰형도, 식구들 모두 좋아하셨다.

-

오래된 일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아버지와 그리 좋지 못한 나날들은

이미 다 기억속에서 바스라져 거의 남아있지 않고

지금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훨씬 많다.

어찌되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1인분의 몫을

못해드렸고 2000년 이후 그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으니까 말이다.

-

아직도 가끔,

나는

80년대 어느즈음으로 날아가

아버지의 노란 포니픽업에 몸을 싣고

석양이 질 무렵의 5층짜리 아파트 단지를

뽈뽈거리며 느릿하게 달리곤 한다.



https://brunch.co.kr/@perytail/651



-


어머니는 십몇년만에 꿈에 아버지가 나오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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