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배달해 줄 마음 하나

파주 여행 2(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의 느린 우체통)

by 친절한 상담쌤

국내 여행의 일정은 주로 남편이, 해외여행은 제가 맡아서 계획합니다. 그런데 지난 27주년 결혼기념일에는 갑작스럽게 파주로 여행지를 변경해서, 바쁜 남편을 대신해 제가 일정을 짜보게 되었어요.


그동안 파주를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남편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했기에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준비해 보니, 파주는 하루 이틀로는 다 둘러보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고 매력적인 도시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요즘은 바쁘게 움직이기보다 여유롭게 머무는 여행을 선호하게 되어, 남편과 제가 만족할 만한 장소 두세 곳만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발길 닿는 대로 다녀보기로 했지요.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었습니다. 민간인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는 DMZ의 분위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참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직접 방문해 보니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더군요.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찾을 정도의 장소를, 저는 이제야 방문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뜨거웠던 터라 공원의 일부만 둘러볼 수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우연히 '느린 우체통'을 발견했습니다. 예쁜 엽서에 편지를 써서 넣으면 1년 뒤에 받아볼 수 있는 특별한 우체통이었죠. 우표까지 제공된 엽서에는 여행자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담겨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움큼 엽서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처럼 한 장을 골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갔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딸아이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공부와 취업 준비로 바쁜 딸아이에게 전할 작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엽서를 썼습니다. 뙤약볕 아래 서둘러 써 내려간 글이었지만, 1년 뒤 딸이 그 편지를 받아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OO야,

엄마와 아빠는 지금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와 있어.

여기서 우연히 '느린 우체통'을 발견해서 너에게 편지를 쓴단다.

1년 후의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원하는 곳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성실하게 걸어온 너니까, 너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있을 거라고 믿어.

가끔은 그 꿈이 여전히 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방향만 잃지 않고 걸어간다면, 그 꿈은 언젠가 반드시 너의 것이 될 거야.

그리고 언제나 너의 곁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걸 기억해 줘.

너무 힘들 땐, 언제든지 와서 기대도 돼.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다.

너 자신을, 그리고 너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뙤약볕 아래 급하게 엽서를 쓰기보다는 근처 커피숍에라도 들어가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장씩 편지를 써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한 번 ‘엽서를 남기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도 이 편지를 빌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항상 너희 자신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렴. 그 길 끝엔 반드시 너희가 꿈꾸던 소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느린 우체통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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