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여행 3(갤러리 그리브스에서 만난 학도병들)
나는 파워 J 성향답게 여행을 가기 전에 동선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이번 파주여행은 조금 달랐어요. 계획은 세웠지만, 상황에 따라 조율해나가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여행 스타일은 남편이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많이 불편했지만, 오랜 시간 남편과 함께 여행하다 보니 이것도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그릇 세트를 구입하는 것이었고, 그 외의 일정은 ‘보너스’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파주 여행을 마친 지금,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갤러리 그리브스”라고 말할 겁니다. 사실 이곳은 애초의 여행 계획에 없던 장소였어요.
곤돌라는 타고 DMZ로 들어가 보기로 했을 때, 남편이 금액 차이가 크지 않으니 뭔지 모르지만 통합권을 끊자고 말했습니다. 통합권은 곤돌라 왕복 탑승과 갤러리 그리브스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갤러리 그리브스는 과거 미군의 볼링장에서 전시공간으로 재탄생하여 한국전쟁의 학도병, UN 파병용사의 젊은 날과 정전협정서의 DMZ역사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캠프 그리브스 입장권을 구매하면 함께 관람할 수 있어요. 다만 아쉬운 점은 곤돌라와 갤러리, 캠프의 운영 주체가 달라 안내가 미흡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다른 관광객도 "직원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며 우리 부부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어요. 우리 역시 통합권을 따로 사고, 캠프 그리브스 입장권도 따로 구매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캠프 그리브스는 안 둘러봐도 괜찮을 것 같고, 통합권만 끊어서 곤돌라와 갤러리 그리브스만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갤러리 그리브스에서 저는 ‘학도병’의 존재를 처음으로 깊이 있게 마주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작전의 성공 이면에 어린 학도병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요.
그곳의 자료에 따르면, 학도병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학생 신분으로 자진 참전하게 된 14세에서 17세 정도의 학생입니다. 이들은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계급장이나 군번도 없이, 수류탄 몇 개와 총 한 자루를 들고 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포항여중 전투에서는 71명의 학도병이 수류탄 2발, 실탄 250발 정도를 지급받고, 장갑차와 기관포,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정예 유격부대와 맞서 싸웠습니다. 이 전투에서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근우 학도병은 전사했고, 그의 시신 속에서 어머니께 쓴 편지와 일기가 발견되었어요. 그 편지를 읽으며 나는 가슴이 아파,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편지를 직접 전달받으셨던 근우 학생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장사리 전투는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기만 작전이었습니다. 이 작전에 투입된 한국군 772명 중 718명이 학도병이었어요. 이들은 입대한 지 18일 만에 실전에 투입된 이들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화려한 성공 뒤에 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파주에서 저는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휴전 국가’라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파주에서 차를 타고 지나며 무심히 바라보았던 철조망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통해 분단국가의 아픔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파주에 가신다면, 꼭 갤러리 그리브스에 들러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학도병들이 지킨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