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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왔어요

육아일기(생후 1개월 ~ 2개월)

by 친절한 상담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여 2003년도에서 2004년도까지 쓴 육아 일기장과 작별하기 위해 그 기록을 온라인으로 옮깁니다. 개인적인 기록의 보관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되어가는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아이가 성인이 된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보면서 느낀 감정들과 생각들을 나누려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2003. 4. 7

00 이와 함께 산후조리원을 나와서 집으로 왔다. 소아과에 가서 00이 건강검진과 BCG 예방접종을 했다. 00 이가 예방접종을 하는데 내가 더 겁이 났다. 00 이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데... 집에 오니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2003. 4. 10

00 이가 어제부터 자주 토한다. 토한 후 보채지는 않지만 갑자기 많은 양을 토해버려서 맘이 아프다. 00 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할 텐데... 00 이는 괜찮은데 자꾸 눈물이 난다. 00 이가 토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소화시켰으면 좋겠다.

2003. 4. 11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자고, 먹고, 싸고, 씻고 등 생리적인 반응들에 집중하며 보내는 시간들...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2003. 5. 5

00 이는 매일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언제나 이쁘다. 울 때도, 웃을 때도... 00 이가 좀 더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소망이다. 원초적인 소망에 웃음이 난다.


2003. 5. 6

00 이가 부쩍 자란 느낌이다. 수유랑과 시간도 벌어지고 있고... 어느 날 보면 부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울다가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왔구나. 내 불편함을 해소해 주겠지’하는 믿음이 있는지 잠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우리 00 이를 잘 기르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00 이를 품에 안으면 가슴 가득 행복이 느껴진다. 이 시기를 잊지 않고 기억하련다. 아무 바람 없이 존재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이때를...

2003. 5. 7

00 이가 하루 종일 칭얼거렸다. 어젯밤에 00 이를 돌보느라 거의 잠을 못 잤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수유량과 간격도 흐트러지고... 내일부터 다시 잘 시작해 봐야겠다. 칭얼거리고 힘들게 할 때조차도 사랑스러운 00. 엄마가 얼마나 00 이를 사랑하는지 잘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시도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도록... 00야. 사랑해.

2003. 5. 8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우리 00 이도 크면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을 달아주겠지? 00 이가 얼른 말을 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다. 매일 많은 이야기를 혼자서 하고 대답하고 있다.

2003. 5. 9

00 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칭얼거린다. 칭얼거릴 때는 단호히 모른척해야 한다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 작은 몸으로 찡그리는 모습을 보면 안아주고 얼러주느라 밥을 먹지 못해서 ‘핑’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이렇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자 하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으니 이 순간을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려 한다.


이때는 디지털카메라가 없었다. 그래도 필름 사진기로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아이 사진을 찍어줘서 그 사진들을 모아서 사진첩에도 아이에게 메모를 남기고, 병원에서 준 수첩에도 육아일기를 썼다. 사진과 함께 있는 일기장은 글을 온라인으로 다 올리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아무래도 사진은 사생활이니까.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서 남편과 같이 사진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귀여웠구나 하고...


청소년기에 아이가 '엄마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히 아는데, 아빠는 잘 모르겠다'라고 한 적이 있다. 감정표현에 서투른 남편이라서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내가 말해줬다. 아빠는 퇴근하면 언제나 자는 너의 모습을 꼭 본다고... 그러던 남편이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표 얻으려는 국회의원처럼 딸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다. 아이 말로는 이제는 자신이 곧 떠날 것을 알고 아쉬워하는 것 같다나. 아이가 독립해서 남편이 외로워하면 그토록 기르고 싶어 하는 강아지를 식구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요즘 예전에 쓴 내 글과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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