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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1. 2023

[에세이] I AM

Intro.

 시월, '달(月)을 본다(視)'는 뜻으로 몇 년째 사용 중인 필명이다. 지인들은 내게 필명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달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뜩, 내가 언제부터 달을 좋아했던 것인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시 한 편이 생각났다. 그 시를 읽은 것은 밤을 두려워하던 중학생 때였다.


 중학교 시절, 나는 매일 밤 울었다. 왜 눈물이 터졌는지, 무엇을 그렇게 슬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그동안 부정해 왔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밤이 무서웠던 것 같다. 더 정확하게는, 어두운 밤에 홀로 눈을 뜨는 것을 무서워했다. 밤은 어둡고 외로웠으며 충동적이었고 불안했으니까. 한밤중에 나만 깨어 있는 것 같은 그 기분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공간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악몽을 되풀이하듯 밤은 계속 찾아왔고, 나는 그 순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울음은 끊기지 않았고, 슬픔과 두려움은 벌레처럼 나를 갉아먹었다. 밤은 매일 나를 삼켰고, 나는 그 속에서 뜬 눈으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때 나는 내 몸에서 썩은 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매일 밤 나는 혼자만 눈을 뜬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정호승 시인의 시 ‘희망을 만드는 사람’을 접했다. 특히 시의 첫 번째 연은 깊은 울림을 선사했는데, 시 속 상황이 나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 전체가 잠든 와중 혼자서만 눈을 뜨는 것 같았던, 두려워하고 외로워하던 내가 시 속에서 보였다. 시인은 그런 내게 위로와 용기의 말을 건넸다. 홀로 일어난 밤을 두려워하던 내게 저 하늘을 보라고, 저 별과 달을 보라고, 그것을 보며 희망을 꿈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시를 처음 접한 날 밤, 그날도 여지없이 새벽에 눈이 떠졌다. 곧 공포가 엄습했고, 마음이 떨려왔다. 그때 나는 시의 구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생각과 행동은 별개의 문제였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창밖 밤하늘을 보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켰다. 조금씩 손을 떨며 반투명한 창문을 열었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나를 비추는 밝고 환한 보름달이었다. 달빛은 따사롭게 나를 감쌌고, 나는 달을 통해 위로를 얻었다. 이 밤에 깨어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저 달도 나와 같이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있구나. 그것을 느낀 나는 그날부터 서서히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달이라는 친구를 얻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달을 보며 그저 빛을 즐겼다. 그것은 시인이 말한 희망과 같았다.


 시월이라는 필명은 그로부터 몇 년 뒤에 붙인 것이었지만, 분명히 그때의 영향이 크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밤을 두려워할지도 몰랐고, 달의 밝음을 알지도, 그것을 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시월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 혼자 깨어 있는 듯한 새벽이다. 나는 어둡고 고요해진 창밖의 세계를 힐끔 본다. 오늘도 그날처럼 달이 환하게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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