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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ug 12. 2023

[에세이] 날갯짓

나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하기.

 이번 방학에는 동아리에서 하는 집단 심리상담 세미나에 참가했었다. 2주 동안의 합숙과 상담 끝에 얻은 것은, 스스로 사랑을 부어줘야 할 필요성이었다. 세미나 중 강사님은 내게 자주 나비 포옹법, 일명 ‘손나비’를 시켰다. ‘손나비’란 양쪽 팔을 가슴 위에서 엑스자로 교차시키고는 나비 모양이 된 양 손바닥으로 가슴, 어깨를 스스로 토닥이는 행동이었다. 그 모습이 나비가 날갯짓하는 모습 같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손나비가 날갯짓을 시작하면, 나는 나 자신에게 ‘괜찮아. 고생했어.’라고 말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잘 말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생각해 보면, 성취했을 때의 칭찬은커녕, 실패했을 때 자책한 기억이 더 많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새겨진 저주 중 하나였다. 내게는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혼났던 기억이 많다. 그렇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수용받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나도 내 연약함을 수용할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 뒤늦게 부모님은 ‘괜찮아. 충분해’라고 다독여주기 시작했었지만, 이미 뿌리 박힌 성향은 잘 바뀌지 않았다(그러나 그것이 무가치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괜찮아’, 그 말은 내 사전에서 잘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한 내게도 스스로 고생했다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3월, 군대 훈련소에서 사격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날이었다. 육군 훈련소 출신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곳은 막사와 훈련장의 거리가 매우 멀어서 최소 20분은 걸어가야 했다. 아마도 사격장까지는 30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게다가 사격 훈련부터는 약 10kg 군장을 메야했다. 그 먼 길을 무겁게 간 뒤에야 비로소 훈련은 시작되는 것이다.


훈련을 잘 받아서 우수한 성적을 내면 상관없다. 그러나 기준치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훈련소에서 유일한 휴식 시간과도 같은 주말에 보충 훈련을 받아야 했다. 나는 사격을 잘하지 못했다. 다행히 내일까지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불안해했다. 동기 대부분은 기준치 이상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일도 성적을 못 내서, 동기들은 쉴 때 나 혼자만 훈련받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한숨만 나왔다.


 그러던 중 부모님 생각이 났다. 사실, 나를 챙겨 줄 사람이 없는 군대에 있을 때는 매 순간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지만, 그때는 특히 더 생각났던 것 같다. 만약 부모님이라면 내게 뭐라고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에게 사랑을 부어줄 수 있었다. ‘괜찮아. 고생했어. 내일도 기회가 있잖아.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했으니까 충분해.’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막사로 복귀했다(그리고 그것이 무가치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행히 다음 날, 나는 20발 중 15발 이상을 맞추어서 보충 수업을 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만약 나 스스로 토닥이지 않았다면, 2일 차 사격에는 더 긴장한 나머지 정말로 보충 훈련을 받아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때를 떠올리자 다시금 ‘손나비’의 가치를, 그 날갯짓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다독이는 행동을 어색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매 순간 나 자신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손나비’가 내 가슴 위로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날갯짓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저주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내게 사랑을 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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