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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Oct 14. 2023

60년대를 살아가던 욕망들

김기영, <하녀> 속 이데올로기

 1960년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는 시대를 앞서간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로 평가받는다. 50여 년도 더 지난 지금 이 시대의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만연했던 통념을 엿볼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60년대의 이촌향도 현상, 자본주의의 가속화, 신흥 부유층 세력의 불안한 시선을 본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으며, 특히 가부장제에 지배당하던 가족 이데올로기와 그 속에서 갈등하는 여성 거주 가사도우미(식모, 하녀 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김동식’은 자신을 연모하는 피아노 교습생 ‘조경희’에게 유혹과 협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피아노를 배우러 와. 식구가 하나 느니까 돈이 필요해”라고 말하며 자본주의 속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식의 처’ 역시 돈 문제에 사로잡혀서 어린 아들의 죽음을 묻는 태도를 보인다. 하녀 ‘명숙’의 협박이 동식 부부에게 통하는 이유도 명숙이 두려워서가 아닌, 동식이 직장을 잃고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할 것이 두려워서임을 볼 때, 동식 부부로 대표되는 당시의 사람들이 가속화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은 그때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지배받고 있으나, 영화의 배경은 산업화 초기인 만큼 날것의 자본주의가 포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명숙은 계층 상승을 꿈꾸는 당대 사람의 모습을 대변한다.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여성성으로 남성을 사로잡아야만 했던 모습을 소름 돋게 표현했으며, 그것을 통한 갈등을 치정이라는 소재로 직접 끌어낸다. 페미니즘이 부상하며 남성에 대한 여성의 독립과 투쟁을 보여주기 시작한 현대의 시각에서는 한 남자를 두고 여러 여자가 갈등하는 서사가 시대적 한계로 보여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대를 고려한다면, 영화가 욕망을 품은 능동적 여성상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하녀》는 인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배경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데, 그것은 2층 양옥집이다. 본 작품이 생소했던 저택물 장르를 한국에 정착시켰기에, 배경이 되는 양옥집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층과 2층으로 구분되는 양옥집은 자본주의화로 양극화하기 시작한 두 계층을 시각화하여 사회의 계층 구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 간의 갈등은 인간 소외를 발생시킨다. 영화는 주인이 원할 때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는 존재로서 있었던 당대 여성 가사 노동자의 위치를 노출했으며, 21세기 현재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그때로부터 더 뚜렷해진 계층과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해 더 고찰해 볼 수 있게 한다.


 두 층을 이어주는 계단 역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것은 계급 상승에 대한 욕구이자, 추락의 공포다. 동식을 탐했던 명숙은 그를 빼앗은 뒤 계단을 올라가 2층에서 생활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곳이 아닌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이러한 해석에 근거로 작용한다. 그러한 상승욕과 추락의 공포는 명숙뿐 아니라 동식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2층 양옥집에서 살기 시작한 신흥 부유층 세력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도태에 대한 불안함도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흥 부유층으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2층 양옥집을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적 삶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영화 《하녀》는 스릴러 장르를 십분 활용하여 당대의 정치학적 지배를 충격적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 현재에 이 작품을 볼 때도 강렬한 내러티브와 세련된 미장센을 통해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영화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영 감독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그 전율에 한 번 빠져 보는 것이 어떨까. 2층 양옥집에서 동식의 가족과 하녀 명숙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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