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Oct 08. 2023

거미, 욕망을 사냥하다.

김지운 감독, 《거미집》

 욕망으로 점철된 거미집은 과연 극 중 극 속에만 존재했는가. 2023년 9월 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송강호 주연의 드라마, 블랙 코미디 장르 영화다. 영화 결말을 수정한 ‘김 감독(송강호 役)’이 검열을 피해 몰래 영화를 재촬영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담고 있다.


 극 중 극 『거미집』과 영화 《거미집》은 ‘욕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영화의 제목과 극 중 극 제목이 같은 이유 역시 공통된 주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미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거미집의 보편적인 속성을 알아보자. 그것은 거미가 만든 집, 즉 거미줄로 이루어진 집이라고 볼 수 있으며, 거미는 거미줄로 만든 집을 이용해 벌레를 사냥한다. 이러한 속성이 반영된 『거미집』과 《거미집》의 장소는 어디인가? 『거미집』에서는 극 중 극의 배경이 된 저택, 《거미집》에서는 김 감독이 영화를 촬영한 세트장이다. 두 장소는 모두 인물의 욕망을 사냥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는 결국 죽는 것처럼, 『거미집』과 《거미집》에 드러났던 욕망의 끝은 비극적이었다. 『거미집』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잔인하게 사망하였으며, 《거미집》의 김 감독은 그가 거짓말로 숨기고자 했던 진실, 그의 데뷔작 『불타는 사랑』이 스승 신 감독(정우성 役)의 시나리오를 훔쳤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가 『거미집』을 통해 기립박수를 받았음에도, 세트장에 홀로 남아 쓴 표정을 지은 것은 시나리오를 훔쳤던 그때의 행위가 계속해서 김 감독의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연출 기법을 동원했다.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기법은 ‘나레이션’이다. 영화는 김 감독의 나레이션을 통해 그의 욕망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제시하며 정당화했다. 자칫 잘못 사용하면 영화가 낡아 보일 수 있으나, 1970년대의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에 본 영화의 고전적인 느낌을 살리는 것에 오히려 이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레임 속의 프레임’을 이용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는데, 거울, 액자, 심지어는 역 기역자로 꺾여 있는 난로의 배기구를 사용해 김 감독을 프레임 속 프레임에 가두었다. 이것 역시 그가 갇혀 있는 욕망, 혹은 타인과 구분되어 살고 있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한편, 극 중 극의 하이라이트 신을 ‘쁠랑 세깡스’, 일명 롱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하는 모습 역시 롱테이크로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관객에게 주는 현장감을 관객이 직접 느끼게 했으며, 김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서까지 왜 그것을 고집했는지를 효과적으로 제시했다. 그 외에 보이던 기법은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 페이드 아웃 등이 있었는데, 이러한 기법 역시 영화의 고전적인 느낌과 주제 메시지를 잘 드러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작품은 아니었다. 유머는 주관적인 부분이니 그렇다고 쳐도, 제작사 후계자인 ‘신미도(전여빈 役)’가 김 감독의 시나리오에 열광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형사 역할로 『거미집』에 캐스팅됐던 두 단역 배우는 극 중 서스펜스를 만드는 역할도, 유머를 만드는 감초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대사나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반복되는 장면 역시 상영 시간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영화 창작 과정을 잘 포착했다는 점, 그 시대에 꿈을 꾸던 감독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은 분명 이 영화의 작품성을 증명하고 있다. 주인공 김 감독의 모티프인 김기영 감독의 삶과 작품 세계를 수십 년이 지난 이 시대 사람들에게 다시 흥미를 느끼게 한 점 역시 《거미집》의 가치를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특산물: 안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