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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4. 2023

[에세이] 달리기를 즐기기

'잘하기' 보다 '즐기기'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고 어려서부터 생각했다. 그러나 몸은 무거웠고, 다리는 느렸고, 달리기는 버거웠다. 잘하지 못하니까 남과 비교를 당하고, 비교를 당하니 재미가 없었고, 재미를 못 붙이니 연습하지 않았다. 결국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그렇게 묻어두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욕망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다. 가끔, 좀비 영화, 괴물 영화, 재난 영화 등에서 주인공이 좀비/괴물/재해를 피해 장애물을 피하며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 나도 잘 뛰고 싶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던 때는 성인이 된 후였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대부분이 경험해야 할 군 생활을 대비하는 차원에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달리기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아기가 뛰기 위해서는 걸음마부터 떼야하듯, 나 역시 걷기부터 시작했다. 사실 걷기는 자신 있었다. 몸무게가 100kg에 가까워졌던 시절, “살기 위해서 빼야 한다.”라는 집념으로 아침저녁 각각 6km씩 매일 ‘실외 걷기’로 운동했었기 때문이다. 태양이 가장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때와 달리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은 겨울이었다. 비니를 쓰고 장갑을 꼈다. 코로나 시절이라 마스크도 껴야 했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롱패딩 지퍼를 잠갔다. 달리기 코스로 걸어가며 뒤뚱거렸다. 애벌레같이 꿈틀거리는 내 모습이 퍽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실제로 달라기를 실행으로 옮기려 하는 내 자신에 대견함도 느꼈다. 곧 내가 지난여름 내내 걸었던 어느 천변(川邊)에 도착했고 몸을 풀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워치를 작동하고, 천천히 땅을 박차 나가기 시작했다. 몸은 무거웠고, 다리는 느렸고, 달리기는 버거웠으나… 차가운 공기가 폐에 가득 차고 상쾌함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순환하는 겨울 공기의 쨍함은 달리기 하는 내 뇌에 도파민이 돌게 했다. 그러자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버거웠지만 그 짜릿함은 내 허벅지를 계속 태우면서 바람을 스치며 나를 달리게 했다. 혼자 달리는 것이 나를 더 즐겁게 했다. 비교 대상은 없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으니 오로지 홀로 즐기는 겨울이었다.


 500M를 지났다. 1km를 지났다.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1.5km를 지났다. 허벅지가 아려왔다. 숨이 가빠지다 못해 막히고 있었다. 혼이 빠져나갈 듯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래도 저기까지만 달리자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힘냈다. 그렇게 2km를 뛰었다. 손과 허벅지, 그뿐 아니라 온몸이 떨려왔고 두 눈동자는 흔들렸다. 비니를 쓴 머리카락과 롱패딩을 입은 몸 안에는 열기로 가득 찼다. 숨을 헉헉 내뱉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내 입꼬리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곧 활짝 웃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뿌듯함, 성취감? 정의하자면 그저 ‘행복함’이었다. 문뜩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가 생각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첫 달리기의 시간은 내게 진한 기억을 남겼다. 그래서 그날 이후 매일 같이 달렸다. 달리기를 그저 즐겼다.


 사실 그때의 달리기 연습은 정작 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겨울날의 첫걸음은 의의가 있지 않을까? 지금도 나는 숨 가쁠 때까지 달리고는 한다. 아쉬운 것은 아직도 잘 뛰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달린 이후에 느껴지는 그 즐거움을, 행복감을 더 느끼고 싶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달리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붉은 피가 몸속에서 도는 느낌, 땀과 함께 찌꺼기가 빠져나오는 느낌, 상쾌한 공기가 몸을 휘어잡는 느낌이 계속해서 달리기로 나를 강권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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