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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r 14. 2024

[에세이] 궁핍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7평 남짓한 어두운 자취방에도 달은 뜨고 모닥불은 타오른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조그마한 턴테이블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우울한 재즈가 흘러나온다. 조금씩 공명하는 두 개의 무드등 불빛과 그것을 배경 삼아 흐르는 겨울의 음악은 울적한 기분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 같았다. 지난 며칠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썩어가는 시체처럼 틀어박혀 있었다. 몸뚱이에 궤양은 생기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욕창이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전문 용어로 ‘번 아웃’이라고 한단다.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과도한 훈련에 의하거나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여 심리적ㆍ생리적으로 지친 상태’라고 네이버 사전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그런 것인가. 나는 잔뜩 지친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나를 지치게 만든 것인가. 알 수 없다. 지난 방학 기간 바쁘게 달려온 것 때문일 수도, 개강 직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이 과연 그것들일까? 방학 기간 바쁘게 달려왔다고 했어도, 그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했어도, 지금은 그 상처가 아물어지는 중이다. 그렇기에 신학기, 그리고 내 대학생 인생의 마지막 3월이 고작 그것들 때문에 구멍이 난 것 같지 않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침전하는 진정한 근원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제는 졸업해야 한다는, 실질적으로 나의 능력으로 춥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었다면… 차라리 그것이라면 좋겠다. 그것이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삶을 대하는 이 감정에 대한 이유라면, 이 궁핍 역시도 살아남기 위한 자산이 될 텐데.


 그러한 측면에서 이 글은 그러한 발버둥이다. 어둠 속에 처박혀 있는 이 순간의 감정과 사상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중이다.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 것에 감사하다. 어쨌든 이것 역시도 언젠가 내 간증이 되리라. 물론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 이 찬바람이 언제 끝날지, 뺨과 손끝과 허벅지를 베고 지나가는 냉랭한 추위가 언제 멎을지 모르기에… 물론 반드시 멎으리라 믿지만… 이 한기가 그러한 믿음마저 얼려 부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계속해서 궁핍 가운데 굶주린 영혼을 붙잡고 씨름하는 내게서 눈을 돌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자면, 내 주위에는 벗과 사랑,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모두 습한 곰팡내가 가득한 나의 가난과 어둠을 초월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소를 지을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내 미소라고 여기지는 못하겠다. 그 모든 것들을 흡수하지 못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열매는 소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배설되어서 내게 아무런 에너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체력은 떨어지고 영혼은 가난해지고 있다.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다. 가난을 넘어 궁핍으로 치닫고 있는 내 영혼의 불안함이 언젠가 하늘의 찬란한 순금 같은 깨끗함과 환함을 배우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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