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렇게 약하지만은 않아요
어김없이 환절기 홍역을 치렀다.
목이 퉁퉁 부었다. 지방에서는 칼칼하다는 표현을 쓴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헐레벌떡 이비인후과를 내원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목이 너무 부은 터라 엉덩이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코로나에 세 번 걸린 물렁이가 아니라 다행이다.
약을 받고 나오니 가을비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는데 아픈 몸으로 뛰어야 하다니.'
아프면 서럽다.
혼자 있으면 더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엔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내 주변의 관계도, 날씨도,
돌연 문을 닫아버린 단골집도 그렇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다.
아프다는 것은 그 유일한 통제감을 잃는 것이다.
며칠은 이어질 것 같은 고지전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가라앉은 목과 땀에 흠뻑 젖은 옷이 전리품이다.
빨리 낫는다는 것은 약한 걸까 강한 걸까.
어쨌거나 혼자 좋을 대로 생각했던 저녁이다.
이제 약 따위는 필요 없다고 자신했다.
다음 날의 붓기는 두 배로 밀려온다.
빨리 낫는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마음이란 것도 그렇다.
혼자를 자신했던 밤도 그 위에 드리운 천둥소리에 마른 낙엽처럼 부서지는 것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나약함, 부박함, 두려움. '나 오래고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식의 비겁함. '그냥 귀여운걸 보거나, 문득 두려워지면 당신 생각이 나는 걸요'. 모두 함축하여, '나 그렇게 약하지만은 않아요.'라며. 손을 내밀고는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너도 나도 다들 그렇게 살겠지.
아프면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