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즈음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버린 경험.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후배 사원이라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가끔은 여성이란 이유로 함부로 대해지는 경험이 있다. 나는 100%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감정의 쓰레기통 취급을 당하면 한없이 쪼그라든다. 땅을 뚫고 지하 깊숙이 들어가 다시 못 나올 것처럼 축 쳐지고 만다. 분명 좋은 사람도 있고 더 좋은 일들도 있지만,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기억에 오래 남고 오랜 기간 그 기분이 유지가 되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뇌에 남겨두는 것 같다. 내 성격 탓일까? 난 왜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보다 이런 불편한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정확히는 잊고 싶은데 정말 안 잊힌다.
일 년 동안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일 년 동안 한 업무가 뭐냐며 공개적으로 타박했던 팀장.
선임 나부랭이 주제에 책임한테 지금 일정 쪼으냐며 전화로 쏘아댔던 꼰대.
휴가 중에 갑자기 전화 와서 업무 제대로 안 하냐며 화를 내던 팀장. (그것 때문에 휴가 가는 것이 눈치 보는 일이 돼버린 내 바보 같은 태도)
정확한 방향성 제시 없이 자꾸 보고서 만들어 오라던 상사. 그렇게 헤매면서 야근을 하게 되는 나.
회사에서 만들어진 상처는 꺼내면 꺼낼수록 마음만 아프다. 몇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그 기분과 상처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상대방의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던 것 같다.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 나에게 퍼부었던 상황인 것이다. 그 윗 상사로부터 받은 짜증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거나, 수직적인 꼰대 마인드의 심기를 내가 건드렸거나, 본인도 모르니 네가 알아서 해오라고 업무 전달을 하거나, 나는 잘하고 있으나 너 때문에 혼났다 하는 감정 쓰레기를 나에게 버린 것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공과 사를 정확히 가르면, 업무는 업무이니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싹둑 잘라내어 내 일상에 못 들어오게 막으면 그만이다.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업무는 업무이니 업무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그 이야기에 왜 감정의 쓰레기를 실어서 전달하는 걸까? 개인 인권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일까? 내가 만만해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많아진다.
현명한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감정은 걷어내고 Fact 만 꺼내서 그대로 실행에 옮기면 된다. 그런데 감정이 걷어내려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끝도 없이 나를 괴롭힌다. 왜 그 감정의 쓰레기통이 내가 되어야 했을까? 내가 능력이 없나? 내가 만만한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상대방에 생각하는 나는 그렇게 하찮은 사람인가?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가? 정말 내가 쓸모가 없나? 이 회사가 내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걸까? 여기 있으며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회사를 옮겨야 하나? 이래서 내 사업을 하는 걸까?
진짜 끝도 없는 고민에 빠진다. 이 상황에 심각해지면 퇴사하는 절차를 밟는 거겠지.
왜 인간을 서로를 괴롭히면서 살아갈까? 서로를 괴롭히면서 살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상대방에게 감정의 쓰레기를 버렸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다. 공정하지 않다 생각하면 말을 해야 한다. 용기를 내려고 노력 중이다.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필요한 요점만 분명하게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