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여정의 길 - Part 2

나는 맥시멀리스트였다.

by 윤마마

나름 쇼핑을 덜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손에 들어오는 물건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살 때 더 신중하게 생각하려고 애쓴다.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일까. 왜 이렇게 짐이 많은 걸까.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 비자나 기타 다른 서류보다 복잡했던 것은 짐정리였다. 나에게 할당된 컨테이너는 20ft. 1ft(피트)는 대략 30.48cm이고, 20ft는 약 6미터의 길이에 해당하는 컨테이너 사이즈를 말한다. 20ft의 컨테이너에 얼마나 실릴지 가늠할 수 없으니, 해외 이송 담당자분이 집을 찾아와 확인을 해주셨다. 약속을 정하고 나름 짐을 줄이고 줄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집에 설치되어 있던 트램펄린을 처분하고, 피아노, 냉장고, 세탁기, 소파는 가져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짐은 43ft 정도 된다고!! 전문가의 경험적인 가늠으로 28ft 까지는 이송이 가능하시다고 하셨다. 즉 우리는 15ft의 양의 짐을 줄여야 한다.


도대체 나는 얼마의 짐을 이고 지고 살았던가. 그날부터 엄청난 두뇌싸움이 시작되었다. 우선 오스트리아에 가서 사야 할 품목을 줄이기 위해, 이불장/옷장은 가져가기로 했다. 한국과 다르게 내가 선택한 오스트리아 집은 붙박이장이라는 것이 없다. 둘러보았던 집 중에 옷장이 옵션으로 되어있던 집이 있긴 했지만,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선택한 우리 집은 어떠한 가구도 없다. 최대한 서랍장과 옷장은 사수해야 한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 퇴근한 후, 주말 내내 2주 동안 짐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매일 서랍을 발칵 뒤집어엎고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모두 버린다. 100L 쓰레기봉투가 2~3일에 한번 꼴로 버려졌다. 아이들 작품을 모두 사진으로 찍고 잘 정리한 후 처분한다. 아이가 입었던 태권도복, 각종 색깔별 띠도 정리한다. 더 이상 인형놀이, 블록놀이를 하지 않으니 이 또한 처분한다. 작아진 옷들, 안 입고 자리를 차지하는 옷들도 전부 버린다.

부피가 큰 가구나 가전을 줄이면 쉽게 목표한 28ft에 다다를 수 있다. 아쉽지만 식탁, 아이들 옷을 보관하던 작은 행거, 빨래 행거는 처분한다. 매일 중고마켓에 찍어 올리고 약속 잡기가 바쁘다. 하루하루가 짐을 정리하느라 고역이다. 그만하고 싶다.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내가 결혼한 후 10년 동안의 흔적은 너무나도 많기만 하다. 지친다. 힘이 든다. 2024년 가장 스트레스는 이 단언컨대 짐정리였다.


시간이 없어 헐값에 물건들을 넘기면서, 내가 샀을 때의 물건 가치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오래된 물건이긴 했지만 그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빠르게 처분하기 위해 나는 헐값이 이 물건들을 넘긴다. 그것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내 정신과 육체의 건강상태다. 나는 너무 지쳤다. 짐을 정리하는 순간 나는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보다 여기에 남아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내가 선택했던 소비고 힘들게 번 돈을 투자해서 산 물건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내가 물건을 사지 않고 그 돈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고통받지 않았을 텐데. 싸다고 가성비 있다고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샀던 나 자신이 후회되었다.


20ft 컨테이너에 테트리스 하시는 전문가 분들

D-Day. 결과가 성공적이든 실패든 간에 일은 진행되었고 마무리되었다. 그들의 전문가적인 테트리스 짐 쌓기를 통해 나중에는 공간이 남았다. 머릿속으로 나눔 한 식탁과 빨래 건조대가 아쉬웠다. 아쉬움은 아직도 종종 회자되고 있다.


다시 가벼워진 마음으로 오스트리아 출국 날을 기다렸다. 선박으로 짐이 이동하는 시간은 3개월, 우리는 전세계약 만기로 인해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한 달 전에 짐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남은 한 달 동안 밥솥, 4인용 식기들, 이부자리, 3개월 동안 지내야 할 겨울 옷들, 각종 생필품들을 가지고 풀 옵션의 작은 오피스텔로 이동했다. 이미 짐 없는 3개월에 대한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한 달간의 삶이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외투였지만, 그 삶이 덜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물건이 없으니 고민이나 정리를 필요로 하는 일이 없어지고,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소비가 없었다. 짐을 늘리면 안 되기에 쇼핑하는 시간이 줄었고, 하루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출국날.


그 와중에 새로 구입한 실내화. 층간소음 방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구입.


출국 전날은 하루 휴가를 내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캐리어는 대형캐리어 5개, 기내용 캐리어 4개였다. 아이들이 아직 완벽하게 자신들의 물건을 챙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이 또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압축팩을 구입하여 옷과 이불은 최대한 압축을 했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9개의 캐리어에 담기지 않는다. 부랴부랴 추가 캐리어를 예약했다. 그리고 이사 박스에 짐을 담았다. 테트리스를 잘하려고 짐을 넣어다 뺐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래도 모두 담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추가 캐리어를 예약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9개의 캐리어와 두 개의 박스에 짐을 싣고 남편 친구분들의 도움을 받아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지쳐있었다. 무사히 출발했다는 안도감은 아주 적었고,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하여 린츠까지 이동하는 문제와 린츠에서 계약된 집까지 이동하는 고비가 남아 있었다.


짐덩이들, 이민가방 2개+기내용 캐리어 2개 추가


세상에 문제를 가벼이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돈을 지불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을 최소한으로 지불하기 위해 고통 속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기상천외한 금액을 사용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로 잊으려 한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만큼 나를 갉아먹는 것은 없다.


악몽 같았던 한 달을 버텨낸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다독여준다. 엄청난 많은 비용을 쓰고 스트레스는 최대로 치달았고 몸도 마음도 고생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괜찮다고 다독여본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았으니 그 경험치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 뇌를 속여본다. 그리고 내 행동도 긍정적으로 물들길 바라본다. 확실한 것은, 고통이 준 그 경험이 나를 미니멀리스트로 만들어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또 나를 찾아간다.


보태기 : 나와 같이 한국에서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짐 싸는 것이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하고 느꼈다. 짜증으로 가득했던 그 출국길이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니라 하니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 2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두 번째 경험은 보다 나은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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