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의 굿나잇'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줄리엣 비노쉬에게 빠져들기 시작했었지. 어쨌든 영화 한 장면이 기억이 난다. 아빠는 채소를 썰고 있고 엄마는 전기레인지 위에서 무언가 젓고 있고 아이들은 그릇을 꺼내 식탁 준비를 하는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가족들은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난 뭔가 굉장히 뭉클하고 아름답고 질투가 났었다. 내가 자라면서 보았던 주방 풍경은 언제나 엄마 혼자였고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일 시간 없이 바쁘셨다. 그러던 중 별거 아닌 물음에 짜증으로 돌아올 때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홀로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난 후 반복되는 나의 일상도 나의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우리들의 일상도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다. 그중 가장 행복한 변화는 남편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면 적어도 6시에는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 칼퇴를 하고 집에 가면 남편은 저녁 준비를 하고 있고 나도 손 씻고 남편 옆에서 함께 저녁 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던가,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할 일 혹은 준비물이라던가, 요즘 핫하고 핫한 주식/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서 우리는 바쁘게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고 함께 저녁 준비를 한다는 그 기분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동안은 왜 우리가 그러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첫째, 우리는 주양육자가 엄마인 만큼, 살고 있는 집을 엄마인 내 회사 근처로 얻었다. 부부의 직장이 같은 지역이 되는 것도 정말 행운이다. 남편은 주기적으로 회사 지역이 변경되어, 주말부부를 주로 하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해서 저녁 늦게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남편은 주로 외식을 좋아한다. 아이가 없을 때는 주말이 오면 주로 시켜먹거나 외식을 했다. 요리는 주로 나의 몫이었고, 남편은 차려주는 음식은 먹지만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한창 개발일로 바쁠 때 나는 퇴근 시간이 늦었고, 그래서 아이들도 어린이집에서 저녁까지 모든 끼니를 해결하고 오기 때문에 요리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셋째, 상대적으로 깔끔한 내가 모든 일은 우선적으로 진행했다. 말하지 않아도 가사노동에 힘을 쏟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필요치 않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본인의 기준에는 치우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을 테니. 아이들을 위해 건강한 식재료와 요리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언제나 내가 먼저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도 나의 몫이 되었다. 사실 난 요리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차라리 설거지를 하는 게 내 적성에 맞다. 나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여자다.
사실 남편이 집안일을 시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고급 가전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조금씩 남편의 집안일 점유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한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간단한 준비 정도였는데, 어제는 인도식 커리를 만들어서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남편이 한 요리를 먹게 되다니.
내가 육아 휴직을 했을 때, 남편은 회식도 잦았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았다. 정말 많이 울고 우울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나는 처음 하는 육아로 하루 종일 만신창이였다. 화장실도 못 가고 씻지도 못하고 밥 먹는 것조차 아이가 잘 때 깰까 봐 눈치 보면서 먹었다.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라도 아이를 안고 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남편이 너무 미웠다. 그리고 복수를 칼날을 갈았다.
'네가 육아 휴직할 때 두고 보자. 매일 회식과 야근을 통해 독박 육아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지.'
그 이후로 나는 틈날 때마다 가모장적인 명령을 뱉기 시작했다.
'어디 애 있는 아빠가 회식을 가? 나 때는 말이야 회식 갈 때 애 둘 데리고 갔어.'
실제로 난 주말부부일 때, 애 둘데리고 회식을 다녔다. 일할 때는 어린이집에서 봐주지만, 회식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때 나의 상황을 이해해준 우리 팀원들에게 진심 감사한다.
'애 키울 때는 회사일은 조금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눈치 보지 말고 6시 땡 하면 집에 와. 회사 있을 때는 세상 힘들게 일에 집중해서 6시에 끝내.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이 야근이지만. 지금 아니면 애들이 아빠랑 놀아줄 것 같아? 몇 년 안 남았다. 당신은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해.'
그렇게 남편의 육아휴직을 준비했던 것 같다. 나는 복수의 칼날을 갈며 그 시간이 오기까지 인내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남편의 육아휴직인데, 내 맘속에 복수의 칼이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육아가 익숙해지고 어려운 난관들을 다 겪어 내고 나니 마음속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복수보다 중요한 것은 내 행복이니까. 난 똑같이 복수를 하는 것보다 이 시간을 함께 즐기며 남편이 아빠의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복수를 하면 통쾌하겠지만, 아빠가 괴로우면 그 스트레스는 아이에게 간다. 복수를 포기하고 나니 내가 원한 양성평등이 조금씩 실천되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주말에 몰아서 하던 빨래는, 틈날 때 아침에 돌려놓고 출근하면 남편이 널어놓곤 했다. 처음에는 빨래를 했다는 것을 깜박해서 퇴근하고 돌아와도 그대로 인적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겠나,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싶어 그려려니했다. 내 목표는 남편이 집안일과 육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러려면 나의 화부터 다스려야 한다. 내가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일을 그르치지 십상이다. 감정 덜어내기. 휴우...
장보는 것도 내가 알아서 척척했는데, 이제 남편에게 물어본다. '뭐 먹고 싶어?' 좋아하는 음식이면 조금 더 요리하는데 재미를 붙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카톡에 '오늘 저녁은 뭐 먹이지? 에휴..' 하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주부들의 가장 지겨운 고민 '오늘 뭐 먹지?'. 남편이 끼니 챙기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 반찬과 간편 요리를 일주일치 주문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남편, 힘내~'
어느 날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남편이 저녁 준비하면서 땅이 움푹 파일 것 같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둘째 어린이집 방학기간이라 2주 동안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다른 엄마들도 한숨이 푹푹 나는데, 이제 시작한 우리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둘째가 미운 네 살에서 다섯 살을 향해 가고 있었고 고집이 세고 한번 화가 나면 말로는 진정이 안 되는 성격이라 아빠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 때문에 한숨짓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남편이 아이 때문에 한숨짓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그렇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지만, 나는 육아/가사노동 모든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불공평한 것 같다. 나의 육아휴직과는 다르다.
나 때는 말이야.... 휴우, 생략해야겠다. 꼰대는 되기 싫어서.
그래도 내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에 가장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사실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거지 이제 8년이 되어가는 결혼생활에 절대적으로 빠르다 볼 수 없다. 하지만 멀리 보자. 우리는 아직 젊다. 함께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았다.
어설픈 것들을 보면 내가 하는 게 속편 하지 생각이 들지만, 참는다. 아이를 키울 때도, 새로 들어온 신입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면 더 완벽하고 빠르지만, 난 그 아이들이, 신입사원이 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해야 결과적으로 내가 편해진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남편이 자신만의 육아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가사노동의 노하우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줄 참이다. 물론 우리들의 저녁 준비 시간에 방향을 맞춰가기 위한 대화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성장해 나간다.
남편, 육아휴직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