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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마 Feb 22. 2021

잔소리가 미치는 영향

'어휴 듣기 싫은 저 잔소리. 잔소리 쟁이~'

'잔소리를 듣기 싫으면 잔소리 듣지 않게 행동을 해야지. 내가 잔소리를 하고 싶어서 하니?'


친근한 대화다. 드라마를 통해, 친구의 시시콜콜 수다를 통해 들어봄직한 이야기다. 잔소리는 왜 하게 되는 것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 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이 잔소리 아닐까? 전자제품을 사면 안에 안내서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안내서는 굉장히 친절하다. 하지만 친절한 안내서조차 읽기 귀찮아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잘 동작한다. 아주 세세하고 숨겨져 있는 기능이 아니라면 사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잔소리는 어떠한가? 어떤 잔소리도 친절하기보다는 화를 담는 잔소리가 대부분이다. 화가 담긴 잔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혹여 친절한 잔소리 일지라도 반복되면 귀찮은 존재가 될 뿐이다.


나는 잔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어렸을 적 원래 하려고 하던 일도, 엄마가 한마디 하면 갑자기 하기 싫은 반항심이 생긴다. 나에 대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하는 것이 싫다. 나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나도 내 생각이 있는데 왜 어린아이 취급일까.

잔소리는 보통 잔소리를 하는 화자의 생각을 잔소리를 듣는 청자에게 주입시키려는 행동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뼈를 깎는 고통인데 말로 남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처음에는 청자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려 들 테지만 서로가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하다 보면 소용없는 행동이란 걸 금세 알아챈다. 유연하고 눈치 빠른 사람이 먼저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어차피 들어야 하는 잔소리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으련다. 포기가 안되면 싸움이 된다. 누가 더 고집이 센지 겨뤄보자.


잔소리는 단순한 지시형 대화다. 이렇게 해라, 하지 말아라. 잔소리는 지시형에 약간의 화의 감정도 녹아든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말이 아닌 지시형 대화는 듣는 것 자체가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말에 화의 감정까지 느껴진다면 질색팔색 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가장 비효율적인 대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관계가 틀어지면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부모가 사춘기 아이들이 어려운 이유는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서 마음이 닫히고 대화가 닫히면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부부관계에서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잔소리라도 하지 않고 나 혼자 끙끙 앓으면 화병만 생기고 나만 억울한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내 화병이 없어지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잔소리는 너무 효과가 없다. 변화를 일으키지도 않고 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관계의 악화만 가져올 뿐이다. 관계가 악화되면 내 결혼생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더 느려진다. 악화된 관계와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해야 할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감정을 치료하는 것이 더 어렵고 오래 걸린다. 처음에는 회피형 내 성격 때문에 잔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우리 부부관계가 더 악화시키지 않는 완충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결과론적으로 잘한 선택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성격 탓이긴 하지만.


그래서 난 누구에게도 잔소리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도 남동생에게도 잔소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엄마가 산후조리해주실 때는 피 터지게 싸웠다. 나는 내가 원하는 육아방식이 있었고 엄마는 나보다 경험이 많으시니 자신만의 육아와 살림 방식을 고수하셨다.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고 잔소리를 듣고 감정을 상하고 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잔소리를 듣는 것도 잔소리를 하는 것도 모두 에너지가 소모되는 행동인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 둘은 정신적으로 지쳐만 갔다.

나이 어린 남동생이 클 때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늦게 다니지 말아라, 용돈 아껴 써라, 공부해라 등등.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별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싸우면 정말 중요한 이야기도 잔소리로 들리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차피 내 인생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잔소리를 해대며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 동생이지만 그는 나와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생의 정답은 없다는 걸 알고 난 후 나는 그의 인생 방식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성인이 되면 본인의 선택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나도 잔소리꾼이 될까? 현재까지 나의 판단으로 잔소리는 백해무익한데 내 생각이 변화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목표는 편안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의 목숨 같은 아이들과의 관계는 당연하고, 이제는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게 만들어 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시간만큼 미워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의 미래도 미워하는 관계가 되긴 싫다. 사랑했던 사람이고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편안한 관계로 남고 싶은 게 내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루고자 했을 때 잔소리가 방해꾼이 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잔소리는 이제 저 발아래 밑으로 꼭꼭 묻어두자. 방해꾼은 과감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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