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나를 만나서

첫눈에 반하는 그 순간. 그 시작.

by 지혜

"잘생긴 사람 좋아하시나 봐요"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배구를 본다고 하거나, 배구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늘 들었던 말이다.

소개팅 자리에서도, 포털에서 근무하던 시절 마지막 팀이었던 뉴스팀으로 이동했을 때도 이 얘기를 들었다. 꽃미남 선수들로 배구라는 종목이 워낙 유명하고 분명히 잘생긴 선수들이 많은 걸 보면 틀린 말도 아니지만, 어쩔지 발끈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배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선수들의 얼굴 때문이 아닌데…' 항변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물었던 이들은 그 외에 배구에 대한 관심도는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추가 질문들은 잘하지 않더라.


배구와의 시작을 떠올려봤다. 대부분의 이들이 비슷하듯, 아이들에게 첫 스포츠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지금도 각종 스포츠 채널을 돌려가며 올림픽의 모든 종목을 보고 즐거워하는 아빠의 밑에서 자란 나는 배구 역시 아빠로 인해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도 시즌 때면 경기를 보러 가는 체육관 중 하나인 '수원 종합운동장'은 어렸을 적 나의 사진에서도 등장하는 공간이자, 배구 경기를 처음 보았던 곳 이기도 하다.




아빠는 회사 내에서 배구동호회를 할 만큼 운동을 좋아했었고, 마침 수원에서 경기가 있었고 아마도 당신은 경기가 많이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당시에는 프로리그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콧바람 쐬러 간다' '배구라는 것을 본다'라는 화제 하나만으로 신나서 함께 따라나섰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빠와 어렸던 우리들은 우리가 배구를 보는 첫 직관의 순간이 그렇게 짧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내에 가득 찬 사람들, 열기만큼이나 더웠던 공기. 나름 좋은 자리에 앉아서 이쪽 팀도 응원하고 저쪽 팀도 응원하지만, 뭐가 뭔지 도대체 이게 무슨 재미가 있는지 어린 우리들에게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준비해 온 간식들을 먹으며 잠시 지루함을 참고 기다렸으나(그랬다, 우리 생각으로는 엄청나게 긴 억겁의 시간 같았다.) 경기는 끝이 나지 않았고 "조금만 더 보자. 조금만 더 참아보자"라고 아빠가 말했던 기억은 나는데, "더워, 집에 가고 싶어. 밖에 나가서 놀면 안 돼?" 하면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루했던 기억과 달리 사진 속에서의 모습은 체육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원피스 차림으로 입에는 과자인지 사탕인지를 물고 신나 보였다. 뒤로는 한창 경기 중인 것 같은데, 서있는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았을까.


결국 아빠는 백기를 들었다. 우리는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고, 후에 듣자 하니 경기장에 머물렀던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간식 먹고 사진도 찍었으니까 아빠는 분명 제대로 경기를 만끽하기는커녕 경기장의 기운을 느끼기 무섭게 나와야 했을 것이다. 첫 직관의 기록과 추억은 그렇게 바깥에서 더 신나 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으로 사진에 남아있다. 그 뒤로는 제법 클 때까지 경기장에 가자는 얘기는 안 하셨던 것 같다. 자녀를 키운다는 건 이렇게 힘든 일인 것 같다.


경기장에서 어쩌지 못하며 지루해하던 어린 나의 모습은 이따금씩 경기장에서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의 모습으로 오버랩되곤 한다. 저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데려왔을지, 지금 앉은 자리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예매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결정적일 때마다 화장실에 가야 하고 간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를 달래가면서도 경기를 보는 아빠들을 볼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 시절 내가 아빠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담아서 아이가 조금 지루함에 난동을 부려도 이해하고, 날아오는 사인볼을 (나는 이미 많으니까) 베푸는 양 건네며 그날 경기장에서의 기억이 지루하지만은 않았고 즐거웠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한참을 지루해하며 오매불망 경기장 탈출을 기원했던 시기를 지나 머리 알도 제법 커지고, 중계를 보며 아빠가 하나둘씩 경기 규칙을 설명해주면서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다. 지역 연고도 없었던 프로가 되기 전의 실업리그 '한국 배구 슈퍼리그' 시절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빠가 응원하는 팀이었고, 그게 평생의 내 팀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지금 프로리그에서 각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님들의 선수 시절. 어쩌면 내가 순수하게 응원하는 재미, 소리 지르는 재미로 경기를 보던 시절이었던 것도 같다. 화려했던 선수층만큼이나 이기는 것이 너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선수 영입에 대한 이면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알지 못했고, 당시에는 그저 이기는 것이 즐거웠고 좋았던, "잘하는 팀이 우리 팀"이어서 좋았던, 응원할 맛이 너무나도 감칠맛 났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몇 번 정도 아빠를 따라서 경기를 보러 갔었다. 이번에는 실패 없이 아빠와 우리 모두 경기를 같이 즐겼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선수 입장 시 호명이 되면 주변 사람들을 따라 "꺅"하고 소리 지르며, 시원시원하게 때리는 공격을 보며 즐거워하면 돼서 그것만으로도 경기장은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한두 번 아빠와 경기를 보러 가곤 했었는데 어쩐지 본격적으로 경기를 보기 시작하면서는 쑥스러워서는 아빠와 같이 못 갔던 것 같다.(부끄러운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어느 덕후가 부모님과 함께 덕질을 할 수 있겠냐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는 여전히 배구를 즐겨 보시며, 중계화면에 보이는 우리와 선수들의 모습도 즐겁게 보신다. 집에서 유일하게 배구 이야기를 열을 내며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빠다.


경기장에 가득 찬 많은 사람들이 하얀 선으로 그려진 코트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응원하며, 같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그 공기가 너무 좋았다. 굉장히 설레고 멋진 일 같았다.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했다. 두말이 필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공놀이, 배구라는 것에 빠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고, 선수들이 잘생기고 못생기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라고 엮을 수 있었고, 함께 느낄 수 있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게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첫눈에 반하는 순간은 정말 순식간이다. 이유가 없이 그냥 좋으니까 좋아지고 빠지게 되는 것. 스포츠라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마성의 룰인 것이다. 다만 한 명의 배구인(아,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부끄럽지만 배구를 정말 좋아하니까 식구들 앞에서는 그냥 스스로를 '배구인'이라고 한다.)으로서, 더 많은 이들이 배구를 좋아하게 되고 빠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경기장에 방문하는 어린이들을 볼 때면 '그래도 다른 스포츠보다도 배구가 좋지? 응?' '앞으로도 봐줄 거지?'라고 묻고 싶어 진다.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다른 이름 모를 어린이들에게도 배구가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건 일찍 시작할수록 좋으니까. 그만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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