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즌에 뭐해요? (1)

비시즌을 보내는 여러가지 방법

by 지혜

두꺼운 외투와 핫팩으로 겨우겨우 연명을 하던 추운 겨울 바람이 견딜만하다 싶게 느껴질 때면 봄이 다가온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가을야구'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지 아는 것처럼 우리 배구 팬들에게는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을 버티고 나면, 승자들 만이 만끽할 수 있는 '봄배구'가 다가온다. 리그를 시즌/비시즌으로 나누어만 본다면, 팀의 성적에 따라 누군가의 팬은 '비시즌'을 일찍 맞이할 것이고 누군가는 거들먹거리며 '아휴, 이젠 좀 더운것도 같다(오버를 보탬)' 하면서 조금 늦은 '비시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거들먹거림도 다른 종목에 비해서는 그리 많지 않은 팀 수와 많지 않은 경기 수 덕분에 채 4월이 되기전에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되버리고, 다시 가을이 다가올 때까지 모두들 '여름잠'을 자며 기다리게 된다.


시즌이 끝나고 나면 다가오는 아쉬움이나 허탈함은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의 성적과는 별개로 매 시즌마다 찾아온다. 하지만 아쉬움이나 허탈함도 잠시, 나름 바쁘고 빠듯한 비시즌의 일정은 선수들 만큼 팬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시즌을 맞이하는 이들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았다.


첫째 "비시즌 동안 다른 종목을 본다" 말그대로 배구가 아닌 다른 종목을 즐기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즐겨보기도 하고, 스포츠만이 주는 땀방울의 가치나 팀워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즌이 끝나도 다른 종목을 보면서 그 감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보통은 야구+배구의 콤보로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두 종목의 일정 상 일년내내 쉬지 않고 보낼 수 있다. 서로의 시작과 끝이 맞물리기는 하지만 그정도는 안고 갈만하다는게 대부분의 의견이다.


둘째 "정말 배구만 보고 배구만 기다린다" 는 유형. 비시즌 동안 지난 시즌 경기들을 다시 복기하거나 대학리그의 경기 혹은 이벤트 성으로 진행하는 각 팀들의 연습경기 등을 보는 등 배구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대학리그 경기도 많이 취소가 되거나 공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 전까지만해도 대학리그나 연습경기 등은 이벤트 성으로 공개되기도 하여 시즌을 기다리면서 배구를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시간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한다.


셋째 "그저 현업/현생에 집중한다"는 유형. 경기를 보러 갈때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학교가 끝나거나 퇴근을 한 다음 소중한 시간을 내어 경기장을 방문한다. 이벤트 성으로 한 두번 오는 경우도 있지만, 시즌권을 구매하거나 혹은 매번 티켓팅을 해가면서 배구와 팀, 선수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평일 기준 저녁 7시, 주말 낮 2시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이동시간과 착석 등을 고려해서 얼마나 바삐 현업/현생을 치열하게 보내야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만큼 시즌동안 많은 시간과 비용을 '갈아넣는'만큼 비시즌만큼은 미뤄두었던 약속이나 만남, 학교나 회사에 집중을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비시즌을 보내는 다양한 유형과 방법이 있지만 단순히 시즌을 기다리며 시간을 소비한다기 보다,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며 기다림을 알차게 채운다는 편이 가장 좋은 표현인 것같다. 보내는 방법이 각기 다르지만 새로운 배구시즌을 기다리면서 충전하는 시간들은 선수에게도 팬들에게도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적당한 휴식과 새로운 시즌을 위한 준비는 선수들 뿐 아니라 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 시간들이 있기에 새로운 시즌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고, 더 큰 재미가 다가올 수 있다.


시즌이 끝나면 비시즌을 맞이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시즌권/티켓 같은 '시즌물품 정리'와 우리만의 '시즌 쫑파티' 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부터는 온라인 티켓으로 대체되었지만(선택할 수 없었던) 기본적으로 시즌이 끝나면 시즌권과 함께 원정경기/플레이오프 등 쌓아온 티켓들을 경기 일정에 맞춰서 정리하고, '한 시즌 이렇게 또 열심히 달렸구나' 하면서 뜨거웠던 시즌이 끝난 것을 비로소 체감했다. 나란히 늘어놓은 티켓은 경기장을 다닌 물리적인 거리 만큼이나 눈에 보이는 확실한 형태의 것이라서 더 애착이 가고, 티켓에 받은 사인들을 보면서 '이날은 이랬었지' 하고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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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 다니던 때에는 한 시즌에 고작해야 두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남짓밖에 다닐 수 밖에 없었지만, 회사를 그만 두고 시간의 자유를 찾고나서부터는 내 모든 일정의 우선순위에서 배구는 '0순위'가 되었던 것 같다. 그만큼 쌓여가는 티켓도 많아졌고 추억도 차곡차곡 쌓였다. 직관(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봄)을 많이 했다는 우월감이나 자랑보다도, 한 시즌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이렇게 함께한 추억이 많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자 흐믓함이었다. 경기장에 가서 티켓부스에서 예약했던 티켓을 바꾸고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경기를 보고 즐기며,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흔적들. 경기가 있었던 날의 날것같은 생생한 흔적들 말이다. QR코드나 모바일 티켓으로 전환되고 가장 아쉬운 점은 이런 만질 수 있고 정리해둘 수 있는 추억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참 많은 풍경을 바꿨다. 코로나가 다시 잠잠해진다면 그래서 이전처럼 우리들이 경기를 보고 즐길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실물티켓을 모으고 만지고 싶다. 경기장에서 환호하고 울고 웃으며 그 하루하루들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순간이 오기를 언제나 항상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시즌 쫑파티'는 대체 뭔가 싶을 수도 있겠다. 학교에서도 방학식이 있고, 종강파티가 있고, 회사에서의 회식이 있는 것처럼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함께 배구를 보며 울고 웃었던 배구친구들과의 '시즌 마무리'를 정식으로 하는 것이다. 시즌이 끝나고 바쁜 현업의 일정을 대강 쳐내고 나면, 배구친구들과의 시즌 마무리 일정을 잡는다. 사실 대단한건 없다.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이번 시즌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다음 시즌에 대해서 예측도 하며 각종 뒷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FA가 화두가 될 때도 있고, 떠나는 선수나 주목할만한 선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늘 좋은 이야기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 우리팀의 앞날 걱정도 좀 하면서 대나무숲에서 마음이라도 풀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비로소 한 시즌을 제대로 마침표를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우리는 또 언제 만나는 거니' 하면서 진한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이렇게 우리만의 의식을 치루고나면 본격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벤트 성으로 주어지는 팀별 팬미팅이라든가 연습게임이라든가 대학리그라든가 하는 변수의 일정들이 있기에 여전히 바쁨의 연속이지만 '끝났다'라는 생각은 언제나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즐길 수 있었는데', '이번시즌도 재미있었는데

' 하는 아쉬움으로 채워진다. 시즌이 끝났다. 그리고 비시즌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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