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
시즌이 끝나고 배구 친구들과의 "시즌 쫑파티"도 끝내고 바쁜 일상도 적당히 보내다 보면 무료한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일주일에 적게는 2번 많게는 4번씩 여기저기 전국을 누비며 직관을 가서 보내던 일상도 경기가 없으니 활동량도 줄어드는 데다가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가 사는 곳은 부담 없이 대학배구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갖추고 있다. 'KUSF 대학배구 U-리그'라고 통칭되는 그 대회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진출하는 여자배구와 다르게 남자배구는 대부분(극히 일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진출한다. 중·고등학교 대회도 있지만 대학리그는 말 그대로 프로 진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예비 프로선수들의 기량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프로리그의 비시즌을 맞이한 배구팬들의 색다른 즐거움이자 각 팀의 관계자들이 좋은 재목을 찾아보기 위한 방문으로 예상보다 북적북적함을 느낄 수 있다.
대학 진학을 하기 전부터 배구를 즐겨봤었지만(어쩌면 지금도 그렇지만) 프로리그에 한정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에도 배구팀이 있고 나름 성적도 훌륭한 top급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이 뛰는 경기를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서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오로지 배구를 보기 위해 모교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프로리그는 중계를 하기도 하고, 장내 아나운서나 경기 진행을 위한 안내가 경기장에서 충분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기를 보면서 큰 어려움은 따로 없다. 헷갈리는 상황이 생기거나 모르는 룰에 대해서는 중계를 중간에 틀어서 해설자의 말을 듣기도 하고, 같이 보는 이들끼리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뿐만일까?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있고 정해진 자리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대학리그의 경우, 대학리그를 대표하는 슬로건 'Back to the basic'처럼 기본으로 돌아간 날것의 배구 같은 느낌이다. 일단 중계가 일부 있기도 하지만 편성이 생각만큼 많지 않고 프로리그처럼 비디오 판독도 없다. 각 포인트에 대한 것은 심판의 시그널과 점수판으로 판단하고, 선수들의 소리, 지켜보는 관중들의 눈으로 코트를 메꾸게 되는 것이다. 경기장 역시 각 대학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고정된 자리가 아닌, 자율 좌석인 데다가 시야나 안락함 면에서는 프로리그를 진행하는 전문 경기장의 그것과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생동감은 더욱 넘치는 기분이다. 광고판이나 코트와의 배치 등으로 인하여 (물론 코트와 굉장히 가까운 곳도 있지만) 조금은 선수들과의 거리감이 있는 프로리그와는 다르게 대학리그의 경기장은 코앞에 선수들이 있다.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나 선수들이 외치는 소리들, 다른 종목의 선수들이 관중석에서 외쳐주는 응원 등 프로와는 다른 날것의 느낌이 기분 나쁘지 않은 색다름으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학리그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이 어우러져서 합을 이룬다. 프로에서는 같은 팀 내에서 많게는 10살 이상 차이나는 선수들도 있어서 경기를 보며 노련함과 풋풋함을 동시에 느끼곤 하는데, 또래로 구성된 어린 선수들이 으쌰 으쌰 하면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면 절로 응원이 샘솟게 된다. 물론 응원은 특정 팀을 응원한다기보다, 마치 재롱잔치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된다.(그냥 뛰는 모습만 봐도 잘한다 잘한다 싶은)
졸업을 하면 프로무대에 진출할 선수들이기에 프로리그만큼이나 그들의 대학리그도 참 뜨겁다. 매 경기가 그들의 포트폴리오 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프로 진출 시 호명 순서도 더 빨라질 것이다. 순간순간이 평가의 요소가 된다니, 승부도 승부거니와 여러모로 잘하고 싶은 마음들이 모이기 때문에 더 뜨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부분들 대문에 대학리그의 경기장에는 각 대학을 졸업한 프로선수들이 후배들을 응원차 방문하기도 하고, 프로팀들의 감독/코치들이 선수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오기도 한다. 대학팀의 감독/코치들도 배구를 본다면 다들 익히 봐왔던 배구인들이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덤처럼 주어지기도 한다.
경기가 진행된다. 땀이 흐르고 휘슬이 울리며 점수가 올라간다. 경기가 끝나면 누군가는 승리팀으로 누군가는 패한 팀으로 남지만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들이 보이게 된다.
대학리그를 보지 않았더라면 고작해야 제일 먼저 그들을 보게 되는 순간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어색한 정장 차림새를 하고 자신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무리의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를 보면 승패와 관계없이 경기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몸을 던지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분리해서 인식하게 되고, 신인 드래프트를 보면서도 '아, 이 선수가 이 팀으로 갔구나!' '우리 팀에 이선수가 왔으면 했는데' 하게 되는 것이다.
미완성은 또 다른 말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혹은 조금 늦게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구라는 목표 하나로 달려온 선수들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택한 마지막 계단, 그 가능성의 순간들이 담겨있기에 대학리그는 참 아름답고 예쁜 것 같다. 보다 많은 팀이 생기고, 엔트리 수도 늘어나서 보다 많은 선수들이 낙담하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배구'라는 목표를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족한 부분도 많고 어색하고 어설픈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배구'의 즐거움을 오롯이 지닌 그들의 열정이 담긴 대학배구를 보면서 순수하게 이 종목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포개어 본다. 처음엔 프로리그가 끝나고 심심해서 '뭐 볼 거 없나'로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힘을 얻은 것 같아서 원초적인 날것의 대학배구가 참 좋더라. 비시즌에도 제법 괜찮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