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
누군들 내가 이렇게 나이 먹은 아저씨가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흐름은 온전히 나에게만 온 것도 아닌데 나에게만 온 것같이 얼굴에 묻어 나오고, 관절에 묻어 나오고, 그리고 여러 곳에서 묻어 나온다. 생각의 깊이가 그 나이에 맞다면 그래도 성숙이라는 멋진 단어를 붙여주고 싶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둘째 아들이 사진 자료를 주면 ai로 인물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었는데 뭘 해도 뚱뚱한 아저씨가 된다. 원본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어떤 포장을 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금의 내 모습을 지키려 노력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 타인들의 시선에 더 민감해진다. 과거의 경험에서 나오는 경륜은 삶의 지혜가 되어 살아가는 데 시간과 돈을 아끼게 만든다. 이전에 있었던 실패와 아픔의 경험을 통해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결과를 만드는 능력을 깨달았다.
가장 강렬할 때의 기억을 저장해 둔 내 머릿속의 기억 저장소는 그대로 저장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뚜껑을 열어둔 콜라병처럼 탄산이 빠지고 밍숙밍숙한 맛없는 검은 물이 된다. 검은 물은 그저 화장실 청소용으로 조용히 버려야 하는 데 있는 것 마저 지키려 애를 쓴다.
가끔 하고 싶은 말을 1~2초 사이에 잊어버리기도 하고, 내가 어느 장소에 갔는데 뭐 하러 여기 왔지 하며 목적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 일 것 같지만 곧 확 다가 올 미래로 봐 둬야 한다. 그래야 자연스러워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놀란다.
이런 문제는 학력, 경력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 내 나이 또래에게 들어 본 결과이다. 머리는 점점 희끗희끗해지고, 피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온갖 세월의 풍파를 코 앞에서 맞은 듯 세월이 묻어 나온다. 묻은 세월 나누기 싫었는지 벌써 나이차이가 나는 젊은 친구들은 당연하듯 거리를 둔다.
몽골에 처음 와 살았던 아파트 사잇길을 종종 지나가면 입구에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내 허리만 했는데 지금은 내 키 보다 더 큰 나무가 되었다. 더운 여름에는 젊은 잎사귀로, 추운 겨울을 견뎌 새봄을 기다리는 봄을 본다. 자연스럽다. 또 봄이 되면 연한 순들이 건강한 잎사귀들로 감싼 모자를 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