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리게만 보였던 둘째가 어느새 고3이 되었다.
태어날 때 3.8kg으로 우량아로 태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얘는 다리가 길다며 부모의 마음을 흡족게 하려는 너스레인 줄 알았다. 지금 이 녀석의 키는 187cm의 큰 사람이 되었다. 아빠는 174, 엄마는 161 밖에 안되는데 어디서 이런 녀석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는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는 장로님을 보고 지휘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음악적인 재능이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음악은 무슨 그냥 지휘 놀이를 했던 것이다. 또 강아지를 무척 좋아해서 자기 몸짓만한 개의 목덜미를 붙잡고 끌어안을 때는 동물 조련사가 되려는가 했다. 고양이도 무척 좋아하는데 희한하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조금 멀리한다.
정이 많은 녀석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무뚝뚝한 사내가 되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많이 떠났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랬다. 애착이 멀어지며 애증이 된 것처럼 쉽게 정을 주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친해지면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감정을 소비하는 일을 스스로 제어했다. 어쩌면 감추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녀석이 고3이 되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일찌감치 문학을 한다고 한다. 스스로 자칭 "시 쓰는 새끼"가 되고 쉽다고 하여 국어 선생님과 진지하게 상담을 했다고 한다. 이번 겨울에 한국에 나가 유명 작가 북콘서트에 가서 개인적인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부모로서 돈 되는 이과 계열이나 ai, 신소재등 그런 것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아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이 중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는 데 그때 나는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비슷한 나이대에 학생들이 쓰는 내용들이 비슷비슷했지만 마음이 가는 글이 있었다. 물론 내 아들이었기에 스스로 많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금상을 주었다. 아들 녀석의 필적이 아니었다면 대상 후보까지 올릴 수 있었지만 아들 특유의 필적은 이름을 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글로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또 높은 유리천장을 뚫고 꿈을 이룰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희망한다. 자연스럽게, 밥을 먹듯, 쉬운 글, 읽기 편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아니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자기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