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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덴부와 셜리 May 27. 2023

공간이 나를 위로해줄 때, 비 오는 날 뉴욕에서

브런치북 다 때려치고 뉴욕으로08

공간은 아주 중요하다.


풍수도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가지도 중요하다. 잘 안 풀릴 때는 화장실도 더럽고 방도 지저분하다. 그리고 물건을 쌓아놓고 버리지 않고 있다. 결국 공간에서 문제는 사람이다. 내가 마음을 잘 먹으면 공간이 내게 위로를 해준다.


최근 3년간 쓰지 않았던 것은 버리기 - 옷과 이불 등

비싸고 의미 있지만 나쁜 기억을 샘솟게 하는 물건도 버리기

싸고 작은 물건, 빛바랜 상장 등 내게 좋은 기억, 자부심을 주는 물건은 잘 보이는 데 두기

화장실은 락스 청소  자주 하기


이러면 좋은 공간이 된다. 그러면 작고 낡은 집이라도 그 공간이 내게 위로를 해준다. 일어나라고 말이다. 나는 재충전과 새로운 시도를 위해 잠시 공간을 옮겼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오늘은 뉴욕시간 기준으로 묘시, 새벽 6시 전후로 오랜만에 전화와 카톡, 문자들이 몰려왔다.


평소에 없더니만 말이다. 어제는 브루클린 브리지도 걷고 해서 무려 18km나 걸었다고 건강 앱이 알려줬다. 그래서 어제 쓰러지듯 잠들었더니 오늘 안 그래도 일찍 일어났다. 비 오려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제법 쌀쌀했다. 시원할 때 조깅을 할까 하며 눈을 떴다.


예전 뉴욕에서는 매일 아침에 조깅을 했었다.


29살에 갔던 뉴욕, 호텔은 큰 공원 앞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쓰고 아침에는 커피와 우유, 머핀과 시리어을 좁은 로비에 두었다. 그리고 침대는 병원 입원실에 간이침대 같은 거였다. 그래도 시내 중심가였었다. 나는 시차에 바로 적응해서 아침마다 그 공원을 뛰었다. 운동을 하지 않은 마른 비만형(말랐으나 몸에 지방만 있고 근육이 없는 형태) 체격이었던 그 젊은 시절에도 뛰는 게 너무나 상쾌하고 좋았다. 뉴욕 내내 뛰었다. 그 공원이 한국 와서 보니 센트럴 파크였다.


어릴 적에 어씨스트하느라 월급이 차비밖에 안 나오는 저임금, 밤샘 촬영과 철야 편집, 도제 시스템 등에 시달렸던 나로서는 그 큰 공원이 나의 위로가 돼주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저 나무가 많고, 말 타는 경찰들이 지나가는 울창한 공원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내가 뛰는 공간이 나의 위로가 돼주었다.


오늘 아침에 몰려든 연락은 모두 업무와 관련되어 있거나 퇴직 전에 관련된 분들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아무 데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차분히 글도 쓰고 책도 보고 조깅을 하려고 했던 참이었다. 무슨 일일까 한분 한분 다시 연락을 해보았다.


(집앞 동네 구스들)


많은 연락 중에 4건으로 요약해 본다.


1. 20억 원짜리 상가를 어떻게 할까? 임대가 걱정이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거는 오늘 아는 선배와 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암요 암요 나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걱정해줬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전세에서 월세로 옮길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선배는 20억짜리 본인 상가에 스타벅스가 안 들어오고 길 건너 상가로 가버렸다는 것에 분노했다. 자신의 상가가 굉장히 요지인데 빌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공간에 대해 위로를 해주었다.


안 그래도 원룸으로 갈까 하며 부동산을 고민하는  나였다. 나는 선배의 부동산 문제를 충분히 걱정해주고 위로해주었다. 가끔 뜬금없이 비싼 건물에 무인 아이스크림가게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것은 대부분 주인이 어설픈 거 임대해주기는 싫고 내가 뭐 차리기 싫어서 하는 경우에 하는 아이템들이다. 그래서 장사를 할까 하는 부분에서도 함께 고민했다. 나는 현재 실업자이고 6개월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상태이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기타 회사생활에 대해서도 즐겁게 수다도 떨었다. 형님은 강남 도곡동이고 나는 딱 그 대척점인 강북 산동네에 살지만 우리는 잘 통했다.


2. 강의하지 않을 래? 서울에 작은 학교이고 시급은 얼마 안 되지만?


뉴욕에 집까지 선뜻 내준 선배가 또 연락이 아침부터 왔다. 뭔가 했더니 가을학기에 강의를 해보라고 급히 연락을 한 것이다. 이 선배가 내게 빌려준 집에서도 충분히 위로를 받고 있었다. 이 공간이 내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고 있었는 데, 선배가 한국에서 또 내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


연락 내용은 내 이력서 하나 보내달라고 급히  카카오 전화를 한 것이다. 어차피 이번 해는 삼재의 시작이고, 올해는 취업이 안될 것 같으니 오케이 했다. 또 강의할 곳도 집과 가까워서 다행이다. 일어나자마자 이력서를 다시 해당 학교에 맞게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빨리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3. 강의하지 않을 래? 일단 강좌 계획서 좀 다시 보내줘


전체 강좌 계획의 틀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세부과목과 추진방향 추진내용 등에 대해서 기본계획서를 작성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전에 교육과정에 대한 컨설팅을 토크로 한번 한 적이 있어서, 그때 했던 말들을 옮겨 적으면 될 듯했다. 양식은 다른 기관의 것을 참조하면 될 것 같다고 내가 말해주었다. 언제까지? 빠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답이 왔다.


방금 연락 온 친구는 예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석사과정을 했던 친구이다. 벌써 딱 20년 전, 잠시 그 친구 집에 묵었었다. 나는 PD가 되고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많이 지쳤을 때, 그 친구 집에서 첫날과 둘째 날은 잠만 잤었다. 그 공간에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있었다. 선뜻 내게 오라고 한 친구에게 감사했다. 나는  그 공간을 굉장히 사랑했다. 샌프란시스코 관광지를 잘 모른다. 동네 비디오 가게, 그리고 차이니즈 슈퍼마켓, 해변가 산책을 매일 했었다.



4. 이거 버릴까요? 퇴직 전 직장의 주임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은 기념 동전과 기념품을 찍은 사진이 카톡으로 왔다. 그러면서 버릴까요? 하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내가 뉴욕에 있으니 시차가 있을 거라고 충분히 말했는 데, 새벽 5시 반에 카톡 카톡 했다. 그전에도 다 버리라고 말했는 데...


내일모레 나이 60이 되시니 이해해야지. 성격이 불같은 데 상당히 디테일하셨던 주임님이시다. 내가 팀장일 때 나한테도 잘해주셨다. 가끔 지저분한 내 책상도 정리를 도와주시곤 했다.


나는 카톡으로 다 버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두고 간 물품은 다 버려주세요.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회사에서 쓰던 거 집에 두지도 않을 거랍니다. 그런 물품이 있으면 나를 더 작게 만들 거 같아요.
 나의 기운을 앗아가는 물건일 겁니다.
저는 새롭게 시작할 것이거든요. 기억나지 않는 기념주화나 나의 쓰던 물거은 내게 생기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거랍니다.


오늘 비가 내렸다. 동네 제일 좋은 길, 가장 비싼 요지에 공공도서관이 있다. 아주 넓다 위치로만 봐도 분위기만 봐도 풍수지리는 안 봐도 될 정도로 좋아 보인다.


도서관은 운을 풀리게 만드는 공간이니까. 예전에 안 풀릴 때 문득 도서관가서 로마인이야기 15권을 다 읽었더니 그동안 힘든 일들이 지나갔던 적이 있었다.


나는 컴퓨터를 들고 도서관에 갔다. 그곳에서 아침부터 전화 온 것들에 대해 일처리 했다. 금방 하루가 가버렸다. 일처리룰 다하고 집에 오니 비가 왔다.


(아래 사진은 도서관)


비를 맞으며 나는 조깅을 했다. 이 공간이 내게 위로를 해준 것 같았다.

29살 때 뉴욕에서 매일 조깅하던 날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동네 리쿠어집에서 피노누아 와인을 살 생각을 하며 더욱 열심히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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