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 다때려치고 뉴욕으로 07- 브루클린 브릿지
원스어폰어타임의 한 장면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그곳이 덤보라고 불리어지는 곳이다. 근처에 식당과 숍, 공동화장실이 많이 있으니 관광에는 불편이 없다. 무조건 관광지 도착은 화장실 체크부터..
덤보라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가는 방향의 다리로 가면 된다. 기차역은 하이스트릿, 요크 스트릿 내리면 된다. 시내에서 지하철 탈 때 방향은 다운타운&브루클린 방향으로 타고 가면 된다.
그런데 뉴욕의 지하철 플랫폼에는 노선도가 없다. 이번 열차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 지가 없다. 다양한 노선이 한 플랫폼에 지나간다. 그래서 이게 뭔지를 모르고 어디를 가는지 모른다. 그냥 그럴 땐 대충 업 또는 다운타운 방향으로 대충 타고 가면 된다.
나는 점보 근처에서 혼자 뇨끼를 점심으로 먹었다.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와인 없이 먹는 건 처음 같다. 너무 덥고 사람 많은 푸드 코트라 물만 시켰다. 여유 있게 혼자서 와인 먹고 그럴 곳은 아니다. 게다가 너무 더워 와인 마시고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래 폐공장 같은 곳이 식당이다)
먹고 나서 고민했다. 저 다리를 건널까 말까. 그거 알지? 다리를 한번 걷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되돌릴 수 없는 거. 넘어가자니 멀고 돌아가자니 아까운 거. 그래서 다리를 건너겠다고 마음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딛으면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것. 이 더운 날 꼭 건너야 할까?
이왕 왔으니 건너가 보자. 힘들지만 말이다. (아래 사진, 다리 길이 참조)
사표는 늘 생각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비슷한 곳일 거고, 정년보장의 유혹, 복지부동하고 시키는 것만 하면 60까지 큰 탈없이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조금 열심히 일하면 감사에 시달리는 일만 생기지만 괜찮은 회사였다.
게다가 모든 유튜브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 퇴직 전 비즈니스, 현금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라. 이직 회사를 확정해라”이다.
나는 회사일로 바쁜 것도 있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있고, 승진을 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도저히 투잡이나 파이프라인, 이직 검색 등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직이나 퇴직은 공기관에선 쉽지 않다. 내가 나이도 있고 비슷한 공기관 정도 이직하는 것도 별로 였다.
나는 스스로 사표를 낼 생각도 사실 없었다. 모든 직장인이 그롷듯 승진하고 퇴직하고 싶었다.
물론 재직 중에 사표를 내고 찾아보면 게으른 내가 “열심히 이직할 곳을 찾겠지.”하는 생각도 있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일만 했다. 석사 때 직장을 잠깐 안 다녔지만, 연구실 생활은 직장보다 빡셌다. 그런데 나이 50에는 새로운 일,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남을 이지매로 괴롭히고 줄 잡는 것을 경쟁과 실력으로 착각하는 바보들의 터전에도 있기도 싫었다.
그래. 사표를 내자. 과감하게 배수진을 치자. 배수진은 알다시피 병법의 한 기술이다. 뒤에 물(큰 강, 바다)을 두고 싸우는 전술이다. 즉,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고 죽자사자 싸워 이기는 병법이다.
아뿔싸. 배수진을 썼던 나는 싸우지도 못했다. 그냥 바다에 빠져버려 흘러 가버렸다. 아..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어푸어푸. 바다는 너무나 넓었고 물은 너무나 깊었다. 망망대해에 크루즈 배를 타고 가는 게 아니었다. 영화 ‘라이프 오프 파이’처럼 호랑이와 함께 탄 작은 돛단배도 아니었다. 그냥 떠다니는 나무상자 하나 붙잡고 떠다니는 것과 같다.
배수진은 잘 못된 전술일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바다는 아주 넓고 푸르렇다. 좁디좁은 소주잔처럼 작은 사회, 에스프레소 잔만 작은 꿈, 고량주만 한 배포를 갖고 있는 좁쌀 같은 무리들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될까? 상어에 잡혀먹거나 열사병으로 죽을 까?
그러던 사이에 어느새 건너온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건너지 않았으면 굉장히 아쉬웠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 대서양의 시작인 바다, 맨해튼의 마천루를 다리 위에서 볼 수 있었다. 건너오면 차이나타운이다. 예전에는 영화 ‘그램린’때문에 차이나타운에 오고 싶었는 데, 결국 이렇게 와버렸다. 그램린은 귀여운 인형같이 생긴 몬스터인데, 물만 닿으면 괴물로 변해버리는 영화이다. 차이나 타운을 거닐며 길거리에 있는 지도를 보고 일단 지하철로 걸어갔다.
여전히 날씨는 더웠다. 그래도 마음먹기 잘했다. 강을 건너기 잘한 것 같다. 배수진을 친 것도 잘 한 거겠지.
(아래는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