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 다때려치고 뉴욕으로 ( 뉴욕 월스트리트)
참고로 내 대학 1학년은 한국이 대통령을 국민 투표로 뽑기 시작한 지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쨌든 대학 1학년, 내가 스무 살 때 본 선배 A 얼굴이 어렴풋했다. 만나면 나도 학교 후배니까 밥도 사달라고 해야지 할 참이었다. 그분은 날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는 내가 왜 동양철학과 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뭘 할지도 몰랐다. 뭐가 되고 싶은 지도 없었다. 졸업 후, 국회 쪽 정치계와 공장(손재주가 없어서), 농사(체력이 없어서)는 안 갈 것이라고만 정했었다. 그냥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뭐 그럴거로만 생각했던 스물이었다. 사랑도 뜨거웠고, 친구들과 크게 노래부르면 즐거웠던 그냥 스물이었다.
예를 들면 씨네 21이 그때 즈음 창간했다. 즉 시민들의 민주의식과 정치적 파워가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등 문화 쪽으로 터지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그런 시대 흐름에 우리 동양철학과 30명 동기생 중 4명이 엔터테인먼트 쪽에 있다. SM에 미스터 리, CJ ENM의 팍, 촬영감독 부영, 그리고 나 포함하면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때 개인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됐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동기 중에 초기에 PC방을 차려 돈 번 서초동 양꼬치집 '김 사장', 온라인 저널리즘 오마이뉴스 편집팀장 '언제나 젊은 영'도 보면, 그전에는 없던 새로운 일자리였다.
A선배가 심각히 아프셔서 못 나가신대, 다른 사람 B한테 전해주면 그분이 선배 A에게 전해줄 거야. 네가 B에게 전해줄 수 있겠니?
그래서 지금 월스트릿으로 지하철 타고 내려서 걸어가고 있다. 선물 들고 말이다.
그러나 선물 전달은 생각해보니 거절해야 했었다. 선물용 차(tea) 안에다가 대마를 넣거나 향정신성 약품을 넣었을지, 지구를 세 번 부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넣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항에서 분명 시커면 셰퍼드가 나한테 와서 킁킁거리다가 내 가방을 보면서 짓겠지. 난 영문도 없이 잡혀갔을 수도 있다. 플루토늄 소지 죄나 향정신성 약품 소지죄로 뉴욕 감옥에서 종신 형…
그 이유는 그전 경제위기 때 시위였다. 월스트릿 시위의 주된 어젠다는 다음과 같다.
1%가 99%를 갖고 있다!
(1%의 상류층이 인구 재산의 99%를 독점하고 있으니 개혁하자라는 뜻이겠지)
만나기로 한 곳을 찾았다. 겨우 아까 봤던 쉑쉑 버거 건물이었다. 그 말은 그 주위를 못 찾아 빙빙 돌았던 것이다.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해맑고 밝고 스마트한 얼굴이었다. 금융가의 슈트 차림으로 다가왔다. 스무 살은 이렇게 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한국말 잘하네...
선물을 잘 전해주고 왔다.
돌아서 헤어질 때 그가 나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대학 때 어떤 사람이었어요?
나는 답했다.
응, 아주 훌륭한 Socialist 였지. 아주 멋진... 암도 완쾌되시길 바라.
나도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