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글쓰기

다시 시작하는 브런치

by 이건희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리고 나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사이 곳곳에 써놓은 여러 개의 글 조각을 모아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직접 책의 사이즈를 정하고, 표지와 내지를 공들여 디자인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인쇄를 했다. 그렇게 태어난 나의 첫 번째 독립출판물은 내 마음에 쏙 들었고, 사람들도 내 책을 좋아해 주었다.


독립출판 작가가 됐다. 전국 곳곳의 책방에서 내 책이 팔리고 있다. 책을 파는 것은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무엇을 써야 하지. 빨리 준비해야 될 것 같은데. 첫 번째 책 보다 더 괜찮은 책을 만들 수 있을까.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이번 주에는 책방 한 곳에 재입고를 하러 다녀왔다. 재입고라니 감사한 일이었다. 사장님은 책을 들고 나타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요즈음 캠핑에 의욕이 생겼다는 사장님은 택배 상자를 뜯어 캠핑 용품을 하나씩 꺼냈다. 날이 추워져 버렸는데 뒤늦게 새로운 취미에 빠지신 모양이었다.


"글 쓰는 거 말고, 다른 취미 생활하는 건 없어요?"


가스버너 위에 모카 포트를 얹어 커피를 내려주시던 사장님은 갑자기 이렇게 물어보셨다. 나 요즘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있나. 생각을 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네, 없어요. 하하. 시시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냥 글만 쓰시는 거예요?"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책방을 빠져나오고 나서도 사장님의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혼자서 신세 한탄을 했다. 취미 생활이라니. 나한테는 돈도 여유도 없는 걸. 이 일은 내 전업이 아니니까. 온종일 글만 쓰고 있을 수는 없다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글마저도 안 쓰고 있었다. 다음 책을 준비 중이라고 해놓고선 한 문장 써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책을 낸 터라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취업준비생이라서 바빠요. 고민 중이에요. 핑계만 늘어놓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한 줄을 쓰면 그다음 한 줄을 쓸 수 있다. 간단한 진리다. 귀찮음과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몽땅 끌어안고 브런치로 돌아와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이번에도 나를 구원하는 건 역시 글쓰기다. 이 글이 어제의 나를 구원할 것이다. 오늘의 글은 내일의 글감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