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한 그릇

1995.02.09

by 이건희

1995년 2월 9일 새벽 6시. 여자는 전주 시내의 한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진통은 일찍 시작됐으나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가 싫은지 꿈쩍을 안 했다. 갖은 애를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배를 가르는 수술을 권했다. 수술을 택한 여자들이 병원 곳곳에 많이 있었다. 여자는 자기도 그래야 하나, 겁이 났다.


의사가 각서 한 장을 내밀었다.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될 경우 병원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곁을 지키던 남편은 각서를 찬찬히 읽은 후에 서명을 했다. 여자에게도, 남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다가 여자는 한 번만 더 참아 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분만실의 문이 열렸다. 곧이어 병원에 도착한 지 열여섯 시간이 지난밤 10시 40분경. 여자는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여자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회복실이라고 해봐야 여러 개의 간이침대가 놓인 방에 불과했다. 흡사 피난처와 같았다. 여자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병원에서는 식사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여자의 몸은 말할 수 없이 지쳐 있었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마음이었다.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터라 따로 여자의 끼니를 준비한 사람이 없었다. 하나뿐인 여동생도 지난해 출산한 갓난아기를 돌보느라 언니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옆 침상에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막 아이를 낳은 산모와 산모의 엄마가 있었다. 여자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여자가 측은했는지 산모의 엄마는 자기 딸을 위해 끓여온 미역국을 한 그릇 덜어 나누어 주었다. 엄마가 없는 엄마는 다른 엄마의 엄마가 준 미역국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피와 땀과 눈물에 젖은 채로, 후련하나 동시에 외로운 복잡한 감정으로 여자는 조심스럽게 미역국을 먹었다. 진하게 우러난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국물. 여자에게는 그것이 마치 꿀을 탄 보약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도 여자는 그 미역국의 맛을 잊지 못했다. 그 후로도 가족들의 생일날마다 매번 미역국을 끓이면서 여자는 그날 밤에 먹었던 그 미역국이 어찌나 맛있었는지를 회상했다. 여자에게 미역국이란 지친 몸을 달래고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엄마 같은 음식이었다.


작가의 이전글구원의 글쓰기